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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동의 「더디가도…」/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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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동의 「더디가도…」/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입력
199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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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의 91년4월∼92년8월의 1년4개월은 많은 변화의 시기였다. 전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의 편집국장이었던 조광동기자(현재 프리랜서로 「부산일보」 「시사저널」의 재미통신원)에게는 그랬다. 45년 서울태생인 해방둥이 조기자는 91년 4월 3주간을 재미 언론인 자격으로 북을 찾았다. 그는 이때의 충격을 「더디 가도 사람 생각을 하지요」라는 책을 냈다 (91년 8월 서울 「지리산」간). 그후 1년4개월후 그는 또 북을 3주간 방문해 「더디 가도 우리식 대로 살지요」를 「정보믹스」사에서 지난해 12월 31일 책으로 냈다. 

 그와 필자 사이는 선후배 관계다. 그는 한국일보 견습기자 28기요 (73년 입사),필자는 17기(64년 입사)다. 특히 그가 시카고 지사에 근무할때인 80년 여름에는 뉴욕에서 유학중인 필자의 스튜디오에 민주당 전당대회를 취재하러 와 1주일을 함께 지냈다. 그때 그는 한국의 민주화에 짙은 관심이 있었다. 북에 관한 이야기는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그가 91년 첫 방북후에 「한겨레 신문」에 북의 탐방기를 쓰고, 이를 책으로 냈을때 큰 충격을 받았다. 필자는 91년 11월5일자 「남과 북」에 「두 시각」이란 제목으로 그의 북을 「객관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결국 북 인민의 강요된 삶을 행복한것이라고 유도해 낸 것이라고 빗댔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모친상을 당해 서울에 왔다.

 그는 문상간 필자에게 빗댄것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93년3월29일자 「남과 북」에서 한완상전통일원장관을 감상적 통일주의자라고 비판한것에 항의의 글을 보낸 적이 있다면서 『선·후배간 공방은 있을수 있는것 아니냐』고 했다. 필자도 이에 동의했었다.

 확실히 그의 첫번째 방문기와 두번째 방문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 생각 하지요」에는 북 인민의 순수함, 북의 정치가 인민을 위한것임을 감명깊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평양에 궤도전차를 놓은 이유가 낡은 버스에서 나는 매연을 방지키 위한것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린 듯했다.

 『더디 가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정신 입니다』라는 어느 관계자의 말에서 책 제목을 땄다. 특히 박숭덕 주체사상 연구소장의 『부르주아적인 이기심을 제거하고 집단을 생각하는 사회주의 인간을 만드는 것이 주체사상이며 주체사상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그와 같은 이기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을 수긍하는듯 했다.

 그러나 1년4개월후 북미에 있는 이산가족들과의 상봉을 취재키 위해 다시 방북한 그는 「우리식대로 살지요」에서는 변모된 북을 여러 면에서 발견한것 같다. 첫번째 방문했을때 느꼈던 북에 사는 사람들의 순수성은 많이 변질된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바뀐 안내원과 여러번 신랄한 논쟁을 벌인다. 그는 짜증스러워져 북이 이런식으로 변화하면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의 방문기· 「시와 사회사」 93년9월간)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듯 했다.

 한 예를 그는 들고 있다. 첫번 방문때 평양 택시들은 거스름 돈을 꼭 건네주었다. 두번째에는 4원 요금에 10원을 주어도 거스름돈을 내주지 않았다. 또한 북을 방문한 적잖은 재미동포들이 가족상봉을 위해 적잖은 돈을 안내원들에게 뜯겼다는 호소를 들었다.

 두번째 방문에서 그의 안내원은 내근자를 데려와 호텔에서 음식을 강요하듯 사도록 했다. 윗주머니에 꽂은 양담배를 거침없이 달라고도 했다. 『돈 주니까 안되는게 없더라』의 사회로 북은 가서는 안된다고 그는 꾸짖듯 말하고 있다.

 금강산 바윗덩이에 수령과 지도자를 칭송한 시를 박아대고 있는 광경을 그는 볼수 있었다. 깊이가 1 글자길이 13, 글자는 비가 오면 글자 속에 들어가 피할수 있는 규모였다. 이에 대해 안내원은 수령과 지도자의 반대 속에 인민이 스스로 하는 일이기에 이를 말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바윗덩이 아래 큰 막사에는 고생하는 이들 석공을 위해 돼지가 뒷다리를 묶인채 고갯길을 올라 특식으로 주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남조국」, 「북조국」하면서 북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적이란 무엇인가. 서울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나 북에서 살아본적이 없는 그에게 북은 조국이 아니다. 감상과 감성으로 보는 사실은 객관일수 없다. 환상만을 보게 된다. 차라리 북은 주관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환상을 벗어날수 있다.

 제발 조광동후배는 「더디게」북을 방문할게 아니라 다시 빨리 북에 가 「우리식대로」의 실체를 파악 했으면 좋겠다. 조기자의 글을 선배인 필자는 주관적으로 보았음을 첨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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