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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첫날 행군도중 「또다른 탐험」생각/신년계획(남극점에 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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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첫날 행군도중 「또다른 탐험」생각/신년계획(남극점에 서다:9)

입력
199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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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링해협 건너기 등 세계일주 이루고파/상상넘는 강한바람… 썰매 옆으로 밀려 94년 1월1일, 새해 첫날이다. 올해도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 이렇게 빙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모험으로 가득하다. 부지런한 성택이가 맨 먼저 일어나 모두에게 새해인사를 한다. 떡국은 없어도 어쩐지 아침이 평소보다 맛있는 것같다. 어제보다 훨씬 추운 영하 20도에 바람마저 거세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 계속 1백25도방향 남쪽으로 전진. 행군하면서도 올해의 계획을 세우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남극점 정복이 끝나면 북극점과 베링해협 건너는것등 세계일주를 다하고 싶다. 대원들의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휴식시간에 음식먹기가 곤란할 지경이다. 너무 추워 평소보다 빠른 하오 7시10분께 행군을 멈췄다. 베이스 캠프와 연락을 취했으나 저쪽에선 여전히 우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같다.

 1월2일. 어제보다 추위가 덜하다. 그러나 얼굴의 고드름은 여전하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간간이 태양이 보이지만 여전히 화이트아웃현상이 계속된다. 오늘도 12시간 걸었다. 썰매가 다소 가벼워진것이 큰 위안이다.

 1월3일. 앞으로 1주일 정도 남은것같은데 날씨가 걱정된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썰매가 옆으로 날리듯 밀려간다. 하오 3시께 남위 88도선을 넘자마자 도저히 전진할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세져 행군을 일찍 멈췄다. 간신히 텐트를 쳤으나 어느새 날려 들어온 눈이 텐트에 가득하다. 버너를 피우고 식사를 마친뒤 기념위스키를 한 잔씩 했다. 너무너무 피곤하다. 마냥 누워있고만 싶다.

 1월4일. 기온이 계속 내려간다. 영하 23도. 텐트를 열고 나가자 무릎까지 찰 만큼 눈이 쌓였다. 비디오 카메라로 이것저것 열심히 촬영했다. 극지에서는 1시간용 비디오 배터리를 20여분밖에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버너에 따뜻하게 데워 사용하면 좀 더 연장할 수 있다. 출발할 때 속이 좋지 않더니 1시간만에 대변을 봐야 했다. 추위를 무릅쓰고 겨우 일을 마쳤더니 일행은 벌써 지평선너머로 사라지려 한다. 전력을 다해 달리다시피 강행군해 30분만에야 합류할 수 있었다. 어제 88도를 넘었으니 잘 하면 1월10일께면 극점에 도달할 수 있겠다. 오늘부터 1시간 더 행군키로 했다. 하오 8시에 텐트를 친다. 텐트도 빨리 쳐야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다. 13시간 행군을 했더니 몸이 물에 빠진 솝처럼 무겁다. 그러나 대원들 모두가 불만없이 잘 해주어 고맙다. 오늘까지 모두 4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찍었다. 이제 1개밖에 안 남았다.

 1월5일. 간밤에 침낭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잔 탓인지 머리가 띵하다. 오늘은 다행히 구름이 한 점도 없다. 태양이 있는 지평선밑에 무언가 밝게 빛나는 선명한 빛이 보인다. 또 태양을 중심으로 무지개가 나타나기도 한다. 저녁에 베이스 캠프와 교신. 처음 제대로 통화가 다이루어졌다. 윤평구기자가 고인경단장이 들어왔다고 한다. 교대로 마이크를 바꾸어가며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극점 정복후 세스나기로 철수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오늘 무지개를 본 덕인지 베이스 캠프의 모두와 통화를 해 기분이 좋다.

 1월7일. 비교적 빙원의 상태가 좋아졌다. 마의 89도를 넘는 날이다. 마음을 다잡고 강행군한끝에 하오 2시께 89도를 넘었다. 이제 앞으로 사흘만 더 걸으면 남극점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나침반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옆으로 틀어지곤 한다. 서경 86도와 87도사이를 전진해야 하나 까딱하면 1도가 틀어지곤 한다.

 1월8일. 이제까지중 가장 추운 날씨다. 영하 25도. 바람은 좌측에서 떼밀듯이 강하게 불어온다. 다행히 빙원은 좋은 편이다. 계속 남쪽 1백25도 방향으로 컴퍼스를 맞추어 걷는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더 힘이 부친다. 이제 이틀만 걸으면 된다. 이 세상 60억명의 인구중 제일 먼저 3개의 극지를 정복하는 역사가 탄생한다. 역사는 꿈과 모험이 없이는 창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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