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품질향상에 과감한 투자/감량경영·엔화 절상·노사 협력도 “큰몫”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미국 자동차의 상승세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일본의 공략이 한창이던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빅3」의 자구노력은 시작됐다.
미국산 자동차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표면적인 요인은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꾸준한 평가절상이다. 일본업체들은 비싼 엔화로 부품과 노동력을 사는 대신 싼 달러를 받고 물건을 받고 팔아야 하니 제품값을 올리지 않고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것이다. 그 반사이익을 미국업체가 누리고 있다는것이다.
저명한 자동차산업 평론가인 매리언 켈러(뉴욕 퍼먼셀즈증권사 부장)는 미국의 자동차전문 월간지 「자동차산업」 93년 6월호에 기고한 칼럼에서 『최근 엔화가 달러당 1백10엔까지 떨어졌다고 해서 그 자체가 미국 자동차업계에 큰 보탬이 된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환율은 미국자동차의 품질향상, 마케팅전략의 혁신등과 결합해서 미국 메이커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미국자동차가 품질과 각종 서비스면에서 일본차와의 격차를 급속히 줄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8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기술·조립·경영차원에서 혁신을 이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빅3가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은 「경영합리화」에서부터 시작됐다. 경영합리화는 우선 엄청난 수의 직원을 줄이고 효율이 떨어지는 공장문을 닫는것으로 시작됐다. 해고된 직원은 일정기간 회사로부터 급료의 일정액만을 지급받게되므로 회사재정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도산위기 넘겨
GM의 경우 한때 전 세계에 걸쳐 77만명이나 되던 종업원을 거의 5년만에 50만명으로 줄였다. 공장도 전 세계에 최고 1백55개나 됐으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미국내 공장을 위주로 24개를 폐쇄했다.
이와 동시에 기존공장의 현대화를 추진해 가장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최대한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GM은 얼마전까지도 부품의 70%를 자회사에서 공급받아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에 적지않은 폐해가 드러나자 부품공급선을 전 세계로 다변화했다. 「품질과 가격만 맞으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부품을 구입한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테네시주 스프링스 힐에 있는 새턴공장의 경우 자회사에 의존하던 의자를 지금은 미시간주 테일러에 있는 존슨 컨트롤사에서 납품받는다. 이 덕에 존슨 컨트롤사는 엄청난 매출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경영합리화 노력은 군살빼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두 차례의 도산위기를 맞을 만큼 경영이 위태로웠던 크라이슬러의 경우 군더더기 관리인력을 대폭 줄인 후 그 자리에 디자이너, 엔지니어, 제품개발기획자등을 배치했다. 그리고 이들로 팀을 만들어 팀별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결정권을 주었다. 6백명에서 7백50명 정도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팀들이 동시에 5∼6개의 모델을 생산했다. 팀웍과 자율을 강조함으로써 굳어진 조직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자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중형 세단인 LH모델의 「콩코드」 「닷지 인트레피드」 「이글 비전」은 시장에 나오지마자 히트했다.
빅3의 경영합리화 추진에는 노조의 역할도 컸다. 전미자동차노조(UAW)라고 하면 미국의 산별노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노조이다. 예를 들어 노조원이 아닌 사람이 사무실에서 컴퓨터의 코드를 뽑아 다른 방으로 옮기면 노조규정에 따라 경고와 함께 벌금을 물게된다.
조립공장에서 파이프가 터졌다고 아무나 고쳤다가는 큰 일이 난다. 반드시 배관담당 노조원이 고치게 돼 있다. 이러한 규정은 노조원보호라는 의미에서 마련된것이지만 그 종류가 너무 많아 공장운영에 차질을 빚은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차의 불황이 계속되자 경영층과 노조는 협력관계를 구축해 이처럼 복잡한 규정을 크게 단순화했다.
포드의 경우 UAW와 협력하여 「미래는 노동자의 손과 머리와 가슴 속에 있다」는 구호를 내걸고 품질향상에 꾸준히 노력했다. 「머큐리 빌리저」를 생산하는 오하이오 주립공장의 경우 노조원은 작업복에 「우리는 모두 똑똑하다」라고 쓴 단추를 달고 다닌다.
노동자의 참여의식과 자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서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도 얼핏 자동차와는 무관한듯한 코너가 마련돼 있다. 「전미자동차노조 포드 품질 넘버 원, 품질향상을 위한 협력」이라고 쓴 현수막을 내건 이 코너는 UAW가 품질향상을 위해 어떻게 합심 협력했는가를 홍보하는 코너였다. 크라이슬러 프레스 공장에서 만난 관계자들도 노조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아주 좋다. 노조가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대답했다.【디트로이트=이광일기자】
◎GM의 산실 「중앙연구센터」/“미래차 만들기” 연간 4조6천억 투입/매출액4%/박사급 연구원만 6백여명… 「그린차」개발 혼신
미국 자동차업계의 잠자는 거인으로 불리는 제너럴 모터스(GM)사는 최근 판매신장률에서 포드사에 뒤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GM사의 중앙연구개발센터(GMR)는 잠을 깨고 재기의 야심을 불태우는 GM의 핵으로 여전히 「꿈의 차, 21세기 차의 산실」역할을 하고 있다.
이 연구개발센터는 미국 자동차의 메카인 디트로이트에서 차로 40여분거리인 워런시에 둥지를 틀고 있다. 70여만평의 대지위에 모두 12동의 연구소 건물이 널찍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은 모두 지상3층을 넘지 않는다. 대신 중요한 시설의 상당 부분은 지하1층으로 들어가 있고 각 연구소 건물은 거미줄같은 지하 통로로 서로 연결돼있다. 지하 시설은 냉전의 산물이다. 냉전시대 미국산업의 심장부인 디트로이트 일대가 구소련의 대륙간탄도탄 공격의 일차적 목표임을 고려한 치밀한 설계인것이다.
단지내에는 캐나다 기러기떼가 한가로이 노니는 인공호수까지 만들어져 있다. 호수를 바라볼때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원용한 치밀한 배려때문이다.
연구센터의 행정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뛰는것이 GM 기술의 상징으로 전시된 여러가지 발명품이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전시품목에 추가된 「슈퍼 마그네트」(초강력 자성체)는 가장 앞쪽에 전시돼 있다. 이 자성체는 기존의 것보다 최고 60%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 자동차에 장착되는 기존 모터의 중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고 따라서 연비를 획기적으로 절감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곳에 전시된것은 빙산의 일각일뿐이다. GM의 신기술중 더이상 비밀에 부칠 필요가 없고 일반에게 공개해도 되는것만 나와있기 때문이다. GM은 그들의 비밀스런 연구실에서 연간 매출액의 4%인 56억 달러(4조5천8백억원)를 연구개발에 쏟아 붓고 있는데 이는 서울시의 1년 예산(일반회계)을 웃도는 규모다. 8백여명의 연구원중 박사가 전체의 78%를 차지하고 있고 석사가 18%, 학사는 4%이다. 이들을 전공별로 보면 21세기 자동차 혁신의 주역이 될 컴퓨터를 비롯, 화공 및 전기전자분야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GM 연구개발센터는 1920년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연구소로 발족한뒤 50년대 중반에 이곳 워런시에 대규모 종합연구단지가 조성되면서 엔지니어링, 환경, 디자인등이 망라된 GM의 두뇌가 됐다. 최근에는 무공해 자동차등 환경오염을 줄이기위한 야심적인 계획이 핵심적인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연구개발센터의 소장이면서 GM사의 부사장이기도 한 켄 베이커씨는 최근 『연구개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두말할것도 없이 비용을 낮추면서도 소비자에게 최대의 만족을 주는것이다. 특히 환경공해를 줄이는 일은 미래의 자동차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경쟁력이 될것』이라고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워런시=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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