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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돈 돌지 않는다/금융기관 주체못해 재테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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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돈 돌지 않는다/금융기관 주체못해 재테크만

입력
199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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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대출외면·은행 단자는 주식투자 열중/설앞둔 자금성수기불구 금리 이례적안정세 돈이 돌지 않는다. 금융기관창구는 돈을 맡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정작 돈을 빌려가야 할 기업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은행과 단자 투신 증권사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지는 자금을 서로 주고받으며 재테크에만 열중하고 있다. 넘쳐흐를만큼 많은 양의 물(돈)이 거대한 웅덩이(금융권)안에서만 빙빙돌며 고여있는 형국이다.

 실명제이후 막대한 양의 자금을 방출했던 한국은행은 작년말부터 「과잉통화」에 대한 수습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중 총통화(평잔기준)는 전년동기에 비해 15.1%증가에 그쳐 86년2월(13.8%)이후 8년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설날이 끼어있는 2월에도 예년(2조3천억원)보다 통화공급을 다소 줄여 총통화증가율을 17%이내로 운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통화환수의지를 밝혔고 설대목을 앞둔 자금성수기인데도 금리는 이례적인 하향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실세금리지표인 회사채유통수익률은 연 11.8%로 올들어 0.4%포인트가 낮아졌으며 CD수익률과 콜금리도 1개월전보다 1%포인트이상 떨어진 연 11.3%와 10.4%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통화환수속의 금리하락」현상은 아직도 시중자금사정에 여유가 있음을 뜻한다. 최근 금융기관 고수익상품에는 엄청난 돈이 밀려들고 있다. 은행금전신탁은 올들어 한달동안 2조8천6백억원이 늘어났고 투신사 장기공사채형수익증권도 2조1천6백억원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생산현장에 투입해야 할 기업들은 꼼짝도 않고 있다. 기업단기자금사정을 나타내는 당좌대월소진율은 현재 35%에 머물고 있고 은행 단자사들은 거래업체에 획기적 융자조건을 제시하며 「대출세일」에 나서고 있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재테크성 자금운용에만 치중하고 있다. 

 한 은행임원은 『설비투자를 주도할 대기업들은 통화가 대량 살포된 지난해 이미 필요자금을 확보해놓았고 여유없는 중소기업들은 당분간 신규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연말부터 경기회복기미는 있지만 기업들이 활발한 설비투자에 나섰다는 징후는 아직 찾아보기가 힘들다.

 고수익예금은 자꾸 늘어나는데 자금수요자인 기업들은 돈쓰기를 기피하니 금융기관들로선 주식과 채권시장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중 은행과 단자 보험사들이 순매입한 주식규모는 무려 8천5백억원에 달했다. 물론 개인투자자들도 많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출수요(기업)를 잃은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주식투자가 최근의 증시과열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증시활황은 바람직하지만 그 원인이 실물경제회복아닌 금융기관 재테크에 있다면 또다시 과열실물투기에 의한 거품재연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에 돈이 고여있는」 자금시장상황은 근본적으로 기업자금수요부진에 있다. 하지만 어쨌든 실물경제규모에 비해 풀린 돈이 너무 많다는것을 입증했다. 실명제와 부동산침체로 「만성적인 자금초과수요」가 사라져가고 기업들의 설비투자패턴도 달라지고 있는데도 통화공급기준은 여전히 「가수요」가 존재하던 「과거의 잣대」에 맞춰져 있다. 

 통화당국의 한 관계자는 『통화는 환수해야 하지만 급격히 돈을 거둬들일 경우 자금시장불안심리를 자극, 모처럼 안정국면에 접어든 금리를 다시 상승시킬 수도 있다』고 「신중한 통화환수」방침을 밝히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총통화증가율이 당초목표보다 낮아졌다고 해서 만족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자금과잉상태인 만큼 초과분을 더 제거해도 금리상승우려는 별로 없다는것이다. 실제경제크기보다 돈이 많이 풀린 상황이 그대로 계속된다면 투기와 가수요가 되살아나 경제가 안정을 잃고 물가마저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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