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추세” 공론화움직임/외무부/“국민정서상 신중대응 필요”/문체부▷부처간 이견◁
일본대중문화의 국내유입, 혹은 개방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간 이견이 적지않다. 외무부는 「국제화와 세계화」의 슬로건 아래 일본문화의 수입과 개방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주장하고있다. 반면 문화체육부는 「일제의 문화침략」이라는 국민정서를 고려해 아직은 신중해야 할 단계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로명주일대사가 『일본의 대중문화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좋다』면서 일본문화의 적극 수용론을 펴고 나선데 대해 외무부는 이를 지극히 당연한 추세라며 공론화할 기세까지 보이고 있다.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 『일본 대중문화를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면서 『이같은 방침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까지 못박고 있다.
외무부는 또 이같은 방침을 2일부터 시작되는 미주및 아주지역 공관장회의에서 공론화해 기정사실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공대사는 『지난해 경주의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 대중문화교류의 총론적 합의는 이미 이뤄졌었다』면서 『공백상태로 남겨뒀던 각론들을 하루빨리 메워나가는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외무부에서 주장하는 일본문화수용론은 현재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가 깊이 침투해 있으며 더 이상 이를 묵인할 경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스며들어 부작용만 가중시키게 된다는것이다. 또 현재처럼 「문화적 쇄국」을 고집할 경우 국제화와 세계화는 국민의 인식과 의식에서 원천적 차단을 당하게 될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등 국제적인 개방화추세에 일본문화에만 족쇄를 채우는 일방적 조치는 어차피 무의미해진다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문화체육부의 방침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것이다. 정문교예술진흥국장은 공대사의 발언과 관련, 『문화체육부는 일본대중문화의 수입개방문제를 검토한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영화 비디오테이프 가요 음반 TV방송등 일본의 대중문화수입을 불허하는 현재의 방침에는 변화가 없을것』이라고 못박았다.
또다른 한 관계자는 『최근 일본에서 활동중인 우리 가수 K모양의 일본가요 국내공연이 외무부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허가된 사례가 처음 있었다』면서 『이 공연도 일본인 관광객만을 고객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문화체육부의 공식 허가를 받은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대중문화의 공개유입은 아직까지 국민정서가 이를 허락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배려」라는것이다.
현재의 정부방침은 이른바 케이스별로 개방과 금지를 시행하고있다. 만화영화와 연극등은 정식으로 개방된 상태이며 영화수입은 논란이 게속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89년 일본영화 「돈황」의 수입이 거부됐으며 91년에는 한일합작영화 「고도」가 제작도중에 중단되기도 했다. 미국직배사 영화수입이 자유화된 점을 감안하면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국민감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매년 한일문화공동위원회를 열어 대중문화교류문제를 협의해 왔으나 이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외무부의 문화협력국장이 우리측 대표로, 외무부와 문화체육부의 실무자들이 위원으로 참석해 온 이 위원회에서 일본측은 우리의 대일문화개방불가 방침이 국제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시장개방을 꾸준히 요구해 왔었다. 그러나 우리측은 정부의 「새로운 방침」이 아직 확정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존의 「관행들」만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애로가 있었다. 공대사의 공개적 제안을 계기로 정부는 공청회등 여론수렴과정과 부처간 협의를 거쳐 허용이든 불가든 확고한 시책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정병진기자】
◎공로명 대사발언 배경/“이미 깊숙이 침투” 음성확산 더위험/일본선 한국영화·드라마 인기높아
지난 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양국의 문화예술교류는 어떤 면에선 상호주의원칙에 벗어나는 일방통행적인 성격이 강해 일본은 한국의 문화정책에 항상 불만을 토로해 왔다. 일본은 한국문화수입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측은 일본의 대중문화 유입을 일제 식민지시대의 기억과 연결시켜 문화침략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 대중문화의 수입을 철저히 금해 왔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에 발을 디딘것은 오래전이다. 한국의 극영화도 92년 「하얀전쟁」이 도쿄영화제에서 그랑프리상을 받은것을 계기로 관심이 고조, 「은마는 오지 않는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개봉관에서 상영됐고 TV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NHK위성방송에서 시리즈로 방영됐다. 일본의 비디오 가게에선 「서울무지개」 「뽕」 「팁」 「외인구단」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등이 가장 잘 나가는 테이프대열에 올라서 있다. 영화수입회사인 JVD는 오는3월 「림권택영화주간」을 선포, 림감독의 작품들을 소개할 계획이다. JVD사는 이에 앞서 림감독 작품인 「장군의 아들」 1,2,3 세편을 수입, 오는 25일 비디오 렌탈을 개시한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있다.
한국이 일본대중문화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논리는 저질의 왜색문화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데다 국내 가요와 영화산업이 보호되지 않는다는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한국의 제한조치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국민들이 알게 모르게 일본문화가 음성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국내 일부 TV방송사에서 일본TV의 오락프로를 그대로 모방하여 방영하는가 하면, TV광고나 만화등도 일본의 복사판이 판을 치고 있다. 또 위성방송을 통해 일본의 TV드라마와 영화등에 접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하는등 일본문화와 접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공로명주일대사는 이같은 저질 왜색문화가 무비판적으로 확산되는것을 막고 정상적인 여과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을 지적한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공대사는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는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문화는 수용하면서 유독 일본에만 빗장을 거는것은 양국의 최고지도자간에 약속한 「미래지향적관계」에도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것같다.
일본에서 양국 문화관계를 연구하는 한국 학자들중에는 『국제화는 현재 세계적 추세이며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화도 대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의 퇴폐적인 대중문화가 지하로 침투하는것을 막기 위해선 정문을 열어놓고 받아들일것은 받아들이고 규제할것은 규제하는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도쿄=이재무특파원】
◎“때됐다” “이르다” 찬반양론/“단계적 개방전략 필요한때”
▷문화계 반응◁
일본대중문화의 수입불가피성을 시사한 공로명 주일대사의 발언이 영화계를 비롯한 대중문화계에 다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시기상조』라는 반대론의 한편으로 『이제 수입할때가 됐다』는 개방론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초 이후 일본문화의 개방론이 대두될 때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찬성의 의견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보다는 일제식민지를 거친 국민감정과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현실적인 여건을 들어 「수입불가」쪽으로 기울곤 했었다. 정부도 여론에 밀려 대일 문화교류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개방계획이나 일정등에 대해선 책임있는 입장표명을 회피해왔다. 대표적인 지일인사로 알려진 이어녕 전문화부장관도 「재임중에는 대일문화개방을 불허하겠다」고 공식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대사의 이번 발언은 힘을 싣고 있을뿐아니라 UR타결이후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어서 대일문화개방논의가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의 입장과는 별도로 영화계나 가요음반업계등 일선에서는 꾸준히 일본문화 수입개방 불가피론이 제기돼 왔다. 우선 법적으로 일본문화의 수입을 막을 근거가 없으며 우리영화가 일본에 수출되고 있고, 조용필 계은숙 김연자등 우리가수들이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만 문을 굳게 닫을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일본문화의 유입을 영원히 막을수 없는만큼 해외무대에서 평가받은 영화등 수준있는 문화상품을 우선 수입하는 단계적인 개방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치않다. 영화감독 정지영씨는 『일본지도자들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한 한일문화교류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92년 일본영화수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우리국민의 대다수인 79·3%가 「안된다」고 답하고 이중 16·4%는 「무조건 싫다」고 한데서도 볼수 있듯 우리나라의 국민정서는 아직 일본문화를 수용할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 일제의 직접피해세대들이 생존해 있는 마당에 누구도 섣불리 일본문화의 수입을 적극 주장할수는 없는 분위기다. 문화체육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정부와는 당분간 문화부문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묵시적인 양해가 되어있는 상태』라며 정부내에서는 이에관해 새로운 입장조정등의 과정이 없었다고 종전과 정책의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문화예술계는 공대사의 이번 발언이 UR타결이후 국제환경이 변했고 김영삼대통령의 방일을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따라서 쌀시장개방에서 나타났듯 무조건 개방하지 않겠다고 부인만 할것이 아니라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 이에 대비토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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