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없는 정책발표 제동 등 감독역/농특세 부과대상 수정지시/「수도권정비안」도 문제제기 국무총리의 위상을 좌우하는 것은 대통령의 신임도, 총리의 개인파워, 부처업무에 대한 조정 및 장악력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중 업무조정 및 장악력은 총리의 실무능력을 보여주는 잣대다.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이회창총리의 점수는 어느 정도일까.
○정책평가팀 대폭 강화
『일을 통해 내각을 장악하겠다』는 말은 역대 총리들이 취임초에 내놓는 단골메뉴이자 다짐이다. 하지만 대통령중심제하의 애매한 총리위상, 부처의 비협조등으로 제대로 이뤄진 적이 거의 없었다.
최근 들어 이총리가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부처업무에 대한 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 묵은 관행을 깨고 있다. 재무부 건설부등 일부 부처에선 총리실과 사전협의를 제대로 않고 정책을 결정·발표하다가 적지 않은 곤욕까지 치렀다. 이총리가 업무조정권이란 「칼」을 뽑아 부처안을 뒤집는가 하면 관계 장관에겐 경고성 호출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총리는 한발짝 더 나아가 총리실내의 정책평가팀도 대폭 강화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해도 각 부처는 총리실을 단순한 청와대보고전의 「통고대상」정도로 여겼던게 사실이었다. 특히 경제 장·차관회의를 거치는 경제부처는 이런 관행이 더욱 심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총리실주관하의 경제부처 발표안건의 재조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점에선 『정책마련·집행에서 부처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나 이견조정등의 감독역할은 반드시 행사하겠다』는 이총리의 소신이 현실화돼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확정된 「농어촌특별세부과안」은 당초의 재무부안이 총리실에 의해 크게 손질된 상태에서 발표됐다. 재무부는 앞서 21일 「관행대로」총리실과의 사전협의없이 세원조달방안을 마련, 이를 공개했다. 재무부같이 「힘있는」부처가 총리실 눈치를 볼 일도 없거니와 재무부의 고유업무에 총리실이 끼어든 사례도 없었던 탓이었다.
그런데 이총리의 지시로 상황이 달라졌다. 농어촌특별세가 저소득층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등 재무부안이 세원조달상 형평의 문제가 있다며 총리실에 재무부안을 재검토 할것을 지시했다. 총리실은 재무부안을 고쳐 고소득층을 겨냥, 골프장입장료, 종합토지세에 농어촌특별세를 물리고 지방이전기업, 저소득층에겐 과세하지 않는 개선안을 만들었다. 이어 이총리지시로 예정에 없이 열린 관계부처실·국장회의에선 이미 발표된 재무부안이 철회되고 총리실의 수정안이 채택됐다.
이를 두고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경제부처업무는 사실상 총리실에선 치외법권이나 다름없었다』면서 『총리실이 개입해 재무부안을 이번같이 손질한 경우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유사한 형태로 이총리가 자신의 업무조정권을 발동한 것은 건설부의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된 이 안은 건축비의 10%만 내면 서울시내 어디서나 대형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하는 등 수도권의 개발전략을 1백80도 뒤바꾸는 내용이다.
○발표 2일전 보고토록
건설부는 지난달 25일 총리실에 사전협의는 물론 안건내용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당정협의를 열면서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이총리는 이를 문제삼아 28일 주례보고때 김영삼대통령에게 건설부안이 결정되는 과정의 문제점을 보고했고 또 총리실엔 보완대책을 만들도록 했다.
김대통령은 이와 관련,이날 하오 정례수석비서관회의에서 건설부안을 겨냥, 『규제를 무절제하게 푸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이총리는 29일엔 지방에 가있던 김우석건설장관을 직접 불러 경과보고를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총리는 각 부처에 총리지시문을 발송,『입법예고사안은 반드시 부처간 협의를 거치돼 총리실에는 발표 2일전에 모든 것을 사전보고하라』고 엄명했다.
전례없이 활발한 총리실의 업무조정권행사는 이밖에도 수질관리대책등 이총리취임후 거의 모든 정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총리는 1개과가 맡아 형식에 불과하던 총리실의 정책평가기능을 4개과로 확대함으로써 부처에 대한 업무장악권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이총리는 31일 『정부가 정책은 많이 만드는데 이를 적절히 평가하는 곳이 없다』며 정책팀 강화이유를 밝혔다. 평가결과는 김대통령에게 직보된다.【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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