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46% “맞은 경험”… 상습구타도 많아/가해자 처벌 특별법제정 등 대책 호소 아내가 남편의 성기를 절단한 미국의 「보비트사건」에 세인의 관심이 쏠려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40대 주부가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이순심씨(40)는 지난16일 상오2시께 술에 만취한채 귀가해 자신을 폭행하고 망치로 집안살림을 마구 부수는등 2시간여동안 난동을 부린 남편(48)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성기절단」과 「살인」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만을 두고 보자면 남성들사이에서 『눈 뜬 아내 조심하자』『아내 무서워서 같이 살겠나』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법도 하다. 그러나 사건의 표면을 한꺼풀 벗겨보면 이것은 수년동안 계속돼온 극심한 가정폭력이 쌓여 빚어낸 비극이다.
로리너 보비트는 법정에서 『결혼생활 4년간 남편에게서 심한 폭행과 성적 학대를 당하며 늘 공포속에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이순심씨도 23년동안 거의 매일 남편의 폭행에 시달렸으며 생활비조차 제대로 주지않아 파출부 일등으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 왔다.
부산의 「이형자교사사건」도 같은 경우다. 이형자씨(38)는 지난해 남편(당시47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5년, 2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해 놓고 있다. 이씨 역시 결혼생활 14년동안 자신은 물론 친정식구들까지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야했다.
이들 사건은 가정폭력문제가 더이상 「남의 일」로 치부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처럼 아내가 되레 범죄자가 되어버린 경우가 아니면 가정폭력은 대개 감춰지기때문에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몇몇 실태조사결과를 볼때 이제 아내구타로 대표되는 가정폭력은 사회적 통념처럼 경제력이 낮은 계층이나 문제가정에만 국한된 일이 아님을 알수 있다.
92년 형사정책연구원이 기혼남녀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여성응답자(6백44명)의 45.8%가 남편에게서 구타당한 경험이 있으며 남성(5백60명)의 50.5%가 아내를 때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구타빈도도 높을 뿐아니라 구타방법도 상당히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구타경험자 52명 가운데 80.8%가 한달에 1회이상 매를 맞았다. 한국여성의 전화 93년 7∼9월 구타상담사례 6백여건을 유형별로 보면(중복응답) 주먹과 발로 두들겨 맞거나 목졸림을 당한 경우가 각각 46%, 50%였고 흉기를 사용하거나 담뱃불로 지져 심각한 상해를 입은 사례도 각각 37%, 4.1%나 됐다.
가정내 폭력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우선 아내구타에 관한 처벌규정이 따로 없기때문에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 보호시설의 경우도 정부차원에서는 서울과 광주에 두 곳이 있고 민간여성단체들에서 운영하는 소규모의 「쉼터」가 고작이다. 또 현행 의료보험제도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해는 보험혜택을 받을수 없도록 돼있다.
이처럼 사회의 무관심과 법률·제도적 보호의 울타리밖에 내버려진채 그저 참고 살아야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이순심, 이형자씨사건의 발생을 막을수 없다는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책임연구원은 『정부차원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종합적인 대처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면서 ▲가해자처벌은 물론 격리·보호감호등을 규정한 가정폭력특별법의 제정 ▲상담기관 경찰 병원을 연결하는 사회서비스체계 구축 ▲피해여성 쉼터 및 가해자 치료센터설립 ▲예방을 위한 부부교육프로그램 개발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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