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고 배고픈 사람에게 겨울추위는 언제나 모질었다. 얼음장같은 차디찬 바람이 옷속 깊이 스며들면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공기도 춥기는 한 가지였다. 문틈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이 아니라도 흙벽을 뚫고 들어온 냉기로 코가 시렸다. 아무리 찬 바람이 부는 날에도 아랫목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집안살림을 맡은 부인의 동동걸음은 낮이건 밤이건 바쁘게 마련이었다. 많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가파른 층계도 두어단 되어서 헛발짚기가 일쑤였다.
이르게 찾아오는 어둠 속에 늦상이라도 차리려면 컴컴한 부엌을 밝힐 등불이 준비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세찬 겨울바람이 부엌을 비켜가지는 않았다. 마주 뚫린 앞뒷문으로 한 차례 「휘익」 북풍이 스쳐가면 등잔불은 여지없이 꺼지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 더듬더듬 발을 내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오지등불은 어느 집 가난한 부엌살림을 한 겨울바람에서 비춰주던것이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 부엌조차 이 등불은 지켜낼 수 있었다. 한쪽 면만 둥글게 구멍을 내서 바람을 마주치도록 하지 않은 까닭이다.
질감이 부드러운 검은 회색빛 오지 안에는 사기그릇을 넣었다. 이 사기그릇에 밀랍과 기름을 넣고 불을 켰다. 좁게 연기구멍을 낸 위에는 손에 들고 다니기 쉽게 끈을 달았다. 서민생활의 소박한 정취가 흠뻑 밴 우리 등잔의 모습이다. 높이 20㎝ 지름 26㎝, 조선후기, 개인소장.【최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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