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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국악의 해」 황병기 조직위원장(월요 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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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국악의 해」 황병기 조직위원장(월요 초대석)

입력
1994.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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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음악 열기 생활화 최선”/서양음악 치중한 학교교육에 아쉬움/사물놀이 등 「국제적상품」 개발 힘써야/남북교류 서로에 도움… 전통보존·극복 조화필요□대담=백우영 문화1부장

 문화체육부가 정한 「94 국악의 해」가 지난 20일 선포식을 가짐으로써 올 한해 동안 국민들에게 「우리 음악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확인시켜주게 됐다. 세계문화의 한 추세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손님격인 서양음악에 너무 많은 정서의 자리를 내주었다. 이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시작된 올해, 국악은 비로소 진정한 우리의 음악으로 거듭날 기회를 맞고 있다. 「국악의 해 조직위원장」을 맡은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씨(57·이화녀대 교수)를 만나 「국악의 해」의 각종 사업계획과 구상을 들어본다.【편집자주】

 ―국악의 해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큽니다. 먼저 올해가 「국악의 해」로 지정된 배경과 의미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최근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국민들 사이에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 영화계를 강타했던 국악영화 「서편제」의 성공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정서를 담아낸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고 「서편제」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준 것이지요. 결국 「우리 것」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전통예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국악의 해」지정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국악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추진하게 될 올해 사업의 전체적인 방향은 무엇입니까.

 『올 한해 동안 일어날 국악바람을 「국악의 생활화」로 이끌기위해 노력할것입니다. 사실 「국악의 해」지정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사업 역할을 하면서 벌써부터 전국적으로 국악붐이 일고 있습니다. 우선 국악관련 각 단체에서 기획하고 있는 공연이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고 그동안 거의 없었던 국악분야의 학술세미나와 출판사업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조직위가 할 일은 이같은 국악열기가 식지않도록 부채질하고 국악이 국민의 생활 속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구체적인 사업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조직위가 다소 늦게 구성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다양한 사업안을 놓고 검토중에 있는 단계입니다. 우선 각 단체가 기획중인 각종 공연을 파악하여 「국악의 해」라는 큰 틀 안으로 묶는 작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국악관현악축제나 종교음악축제, 아시아 민족음악제및 학술세미나,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관현악단 연주회, 여의도 고수부지등에서 벌이는 통일기원 전국무속대회등이 사업안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악이 국민들로부터 너무 멀어졌던것이 사실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악인들이 일제강점기 모멸과 천대의 시대를 거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밀린것도 있지만 광복이후 시작된 미국식 교육제도에서 너무 서양음악 위주로 음악교육이 실시된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이 있듯이 국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국악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가야금 연주자지만 가야금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것이 51년 부산피란시절 중학교 국사시간이었는데 고대악기 중의 하나라고 배운것이 전부입니다.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지 않으니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국악은 모르면서 오히려 서양음악을 더 가까이 할 수밖에 없지요』

 ―국제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악에서도 「문화=상품」이라는 이 시대의 문화논리를 수용해야 할것입니다. 「사물놀이」같은 경우 이제 세계인의 음악으로 대접받고 있는데 국제화에 대비한 「국악 상품화」의 복안은 무엇입니까.

 『세계에서 제일 많은 레코드를 비치하고 있다는 미국의 타워 음반점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만큼 국악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음악입니다. 같은 동양권 내에서 일본, 중국, 인도음악만해도 많이 알려진 편인데 유독 우리 음악만 보급이 안되고 있어요. 조직위에서도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상품화에 대한 다각적인 문제를 검토중에 있습니다. 사실 사물놀이의 경우 상품화가 되기 위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물놀이는 음악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인 리듬으로만 되어있는 독특한 구성 때문에 국악을 모르는 사람도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입니다. 사물놀이는 서양식 멜로디와 화음에 젖어있는 사람들도 거부감없이 들을 수 있는 국악이라는 점에서 폭넓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도 접근하기 쉬운 국악 레퍼토리를 개발하여 서서히 정통 국악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바로 「국악 상품화」의 방향이자 최대 목표입니다』

 ―90년 남북문화교류 때 우리쪽 실무역을 맡아 누구보다도 북한의 국악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남북음악 교류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또 남북문화교류는 근본적으로 통일을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겠습니까.

 『남북문화교류는 정치상황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것이 현실입니다. 다행히 지난해 악화됐던 남북관계가 올들어 서서히 풀리고 있어 한가닥 희망을 걸어봅니다. 북한에서는 국악을 「민족음악」이라고 부르는데 산조·판소리·아악등은 양반예술이라서 금지하고 있고 민요일색입니다. 또 음악적으로도 차이가 나는데 우리가 추사의 붓글씨처럼 다소 거칠더라도 힘있는 소리를 「소리가 실하다」, 「영글었다」고 부르며 최고로 치는 반면 그들은 곱고 깨끗한 소리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고운 소리를 중시하니까 악기개량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대부분의 국악기가 서양악기처럼 개량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전통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한 북한의 국악은 「음악은 인민대중 누구나 쉽게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하며, 전통을 그대로 전승·보존하는것은 복고주의」라는 그들 나름의 음악관에서 기인한것 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가야금독주곡 「도라지」도 민요 도라지를 변주한 곡입니다. 90년 국악교류를 했을 때도 북한에서는 전통음악이 하나도 없었던 반면 우리측은 80%이상이 전통음악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북교류이후 북한에서도 우리 전통음악을 찾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것입니다. 이것하나 만으로도 남북간의 음악교류는 서로의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살찌우며 나아가서는 통일에 도움이 될것입니다』

 ―서양음악과 다른 우리 국악만의 멋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서양음악은 서로 같은 소리끼리 어울려 음을 만드는것에 비해 우리 음악은 서로 다른 소리끼리 어울려 음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서양음악이 같은 모양의 벽돌로 역학적인 집을 짓는 건축이라면 우리 음악은 모양이 서로 다른 자연석으로 정원을 꾸미는 격입니다. 장구의 경우에도 왼쪽은 음, 오른쪽은 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두 요소가 결합하면서 빚어내는 생명의 약동감과 무궁무진한 변화가 바로 우리 음악이 지닌 멋입니다. 우리  음악을 감상하려면 정원을 돌아다니듯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국악을 좋아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거부감을 갖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 귀만 뚫리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악이 오늘날에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이 시대의 감각을 수용하는 국악창작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위원장 스스로도 창작가인데 창작에 대한 철학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창작국악은 현대를 살아가는 창작자의 지적 활동이므로 현대인의 감성을 수용하는것과 동시에 새로운것을 창조해야하는 예술사적 명제를 계승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사실 국악에는 작곡의 개념이 없습니다. 다만 「가락을 짠다」고 말하지요. 체계적 이론과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없는 우리 음악에서 아름다움의 법칙을 찾아야하는 작곡가로서의 고충이 많습니다. 국악 작곡가는 창작의 순간마다 우리 전통을 사랑하면서도 그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막상 전통을 깨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는 언제나 허망함이 밀려옵니다. 전통으로 돌아가려는 욕구와 벗어나려는 욕구 사이의 긴장이 제 작업을 유지해주고 있는 힘입니다. 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가야금 독주곡 「심향무」도 조선후기의 가야금 곡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과 노력이 빚어낸것입니다』【정리=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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