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온도·수위조절은 레이저 이용/밭고르기파종수확까지 컴퓨터영농 미국 쌀 농업의 경쟁력은 기계화를 통한 대규모 영농이 비결이었다. 현지에서 확인된 미국 농업의 기계화정도는 그동안 간접적으로 보고 들어온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새크라멘토 북쪽으로 약 1백50마일 떨어진 뷰트카운티의 TCT 엔터프라이즈. 얼핏 듣기엔 대기업의 상호같지만 사실은 존 톰슨 1세(64)와 존 톰슨 2세(34) 부자가 소유한 쌀농장 이름이다. TCT 엔터프라이즈의 규모는 1천6백에이커. 약 2백만평 크기의 농장일을 톰슨씨 부자와 인부 2명이 돌보고 있다. 톰슨씨가 자신의 농장끝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는 곳에는 아득한 지평선이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광대한 규모의 농장을 단지 4명이 꾸려 나갈 수 있는것은 대형 트랙터와 하비스터(추수 및 탈곡기)등 농기계의 힘 때문이다. 톰슨씨 부자가 고용한 농장인부들도 농부라기보다는 농기계 운전자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비행기로 방제
톰슨씨 부자의 쌀농사는 9월말 벼를 수확한 후부터 시작된다. 볏짚만 남은 논바닥에 불을 질러 볏짚을 태운후 치즐이라는 거대한 기계로 논바닥을 면도칼로 긋듯 20㎝ 깊이로 자른다.
그 다음에는 디스크라는 기계로 바닥을 잘게 부수면서 흙을 뒤집어 엎어 그 속에 농약을 뿌린다. 비행기로 뿌려진 농약은 겨울내 땅속에서 녹으면서 해충을 박멸한다.
본격적인 파종준비는 레이저광선을 이용한 수평기나 불도저와 흡사한 랜드플레이너를 이용해 땅을 고르기 시작하는 3∼4월께 부터 시작된다. 땅고르기는 벼농사에 중요한 물의 온도 및 수위조절등 물관리를 위한것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땅고르기를 한 농가에서는 종전보다 생산량을 50% 늘렸을 뿐 아니라 전체 영농비의 약 6%를 차지했던 물값도 크게 줄일 수 있는 최신장비다.
○영농비 대폭 절감
파종준비가 끝나면 수평이 된 논바닥에 물을 약간 채운뒤 볍씨를 뿌린다. 물론 비행기가 이용된다. 볍씨가 싹이 터서 어느 정도 자라면 제초제등 3∼4종류의 농약을 역시 비행기로 뿌린다. 농약뿌리기와 볍씨뿌리기에 동원되는 비행기는 전문회사 소속이다. 비행기 사용료는 에이커당 연간 30∼40달러 정도. 볍씨를 뿌릴 때는 내다보지 않아도 되지만 농약을 뿌릴 때는 우리나라에서 모내기를 할 때 못줄을 잡아주는것처럼 사람들이 논 양쪽에서 깃발을 들고 비행기를 유도한다.
농약뿌리기가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추수 때까지 물관리만 하면 된다. 잡초의 발생을 방지하고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이 지역에서 밤에 온도가 내려가 발생할 수 있는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물의 높이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것이 물관리의 요령이다.
수확 때가 되면 우선 물을 빼 논을 말린 다음 대형 하비스터로 벼를 수확해서 저장하는것으로 농사는 끝난다.
톰슨씨 부자가 지난해 1천6백에이커의 논중 휴경지와 목초재배로 남겨놓은 땅을 제외한 1천2백에이커에서 생산한 쌀은 8백1만파운드(3천6백30톤). 톰슨씨 부자는 2대의 하비스터와 트랙터 3대, 덤프트럭 4대, 건조기 20개등으로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쌀농사를 짓고 있다.
톰슨씨 부자의 농장 부근에서 역시 논농사를 짓고 있는 데니스 런드버그씨(67)도 하비스터 3대와 논에서 길까지 벼를 운반해주는「백아우츠」2대, 벼를 도정공장까지 운반해주는 50톤 트럭 3대와 대형 트랙터 3대, 소형 트랙터 2대, 레이저 수평기 2대등으로 1천2백에이커의 농사를 짓고 있다.
런드버그씨가 톰슨씨보다논의 규모는 작은데도 더많은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주위의농가에 빌려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돈을 받는다.
런드버그씨는 『우리논에는 사실 하베스터가 3대씩은 필요없다. 그러나 쌀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시에 벼를 수확해야 하기때문에 3대를 장만했으며 내가 사용하지 않을때는 이웃에 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농기계공장 방불
대부분의 미국농부가 이처럼 많은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벼농장의 농기계창고는 웬만한 공장모습과 같아 보인다.
기자들이 톰슨씨부자의 농장을 찾았을 때도 농기계창고 한켠에서는 톰슨씨가 고용한 인부가 여러가지 장비를 이용, 농기계를 수리하고 있었다.
쌀농장이라기 보다는 거대한「쌀공장」이라고나 해야할 새크라멘토의 쌀농장은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쌀공장을 만들지 않는한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새크라멘토=정숭호기자】
◎미 농업인구 2백84만명/91년 현재,농가경지면적은 대형화
미국의 농업인구는 1950년대 이래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미농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50년 6백만명을 웃돌던 농업인구는 60년에 4백13만명으로 크게 감소한 뒤 70년에는 2백88만명으로 줄었다.
이같은 추세는 85년 농업인구가 2백95만명으로 약간 늘어나면서 반전되는 듯 했으나 지난 90년 다시 70년대 수준인 2백86만명으로 떨어진 뒤 지금까지 커다란 변동이 없다.가장 최근의 통계인 91년 3월 현재의 농업인구는 2백84만8천명으로 전체 노동인구(1억1천6백만명)의 약2.5%에 해당된다.
이에 비해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은 지난 50년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여 미국의 농장이 꾸준히 대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서 농장운영 노봉걸씨/아버클마을 이민1세/“한국인이 벼농사 가르쳤다”/“이젠 소비자기호에 맞는 쌀특화 절실”
『미국 쌀농사는 한국사람들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새크라멘토 북쪽의 전형적인 미국농촌인 아버클마을에 살고 있는 노봉걸씨(64)는 『세계에서 품질이 가장 좋다고 하는 미국쌀도 알고보면 한국에서 배운 기술로 재배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
아버클마을의 40에이커(4만8천여평)의 땅에서 부인과 함께 염소사육, 채소재배, 감나무과수원등을 하며 살고있는 노씨는 새크라멘토에 정착, 쌀농사를 지었던 한국인 이민 1세대이다.
59년 유학온 부친을 따라 미국 LA에 왔던 노씨는 자동차수리학교에서 기술을 배웠으나 짧은 영어실력에 부진한 성적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61년 새크라멘토의 쌀농장으로 옮겨왔다. 이곳에서는 전부터 일본인들이 벼농사를 짓고있었으나 2차대전때 일본인들이 미국수용소에 수용된 것을 계기로 농사꾼의 숫자가 줄어들자 한국인들이 그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노씨는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때는 박씨, 김씨, 장씨등 지금은 성만 알고 있을 뿐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5∼6가구의 한국인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맡은 일은 주로 관개시설관리.『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벼농사에서는 물의 수위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수위를 높이면 벼의 키는 커지지만 줄기가 약해 잘 넘어지게되며, 수위를 낮추면 키는 줄어들지만 뿌리가 튼튼해진다. 때문에 물높이를 잘 조절해야만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데 쌀농사를 지은지 얼마 안됐던 미국인에게는 그 기술이 없었다.
요즘은 물높이를 맞추는 것도 레이저등을 이용, 첨단기술화됐지만 알고보면 그 기술의 원조는 한국과 일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노씨의 기술은 미국 농장주들로부터 금세 인정을 받았다. 70년에서 84년까지는 벼농장 총수입의 4%를 받기로 하고 30에이커(3만7천여평)에 달하는 대농장의 위탁경영을 맡아 2명의 인부를 따로 고용, 논사이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물꼬를 관리하여 6개월에 4만∼5만달러씩 벌기도 하였다. 요즘 미국 대졸자들의 초봉이 연 2만∼3만달러정도이니 당시 노씨의 수입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수 있다.
이민온후 아직 한번도 한국을 방문한적이 없는 노씨는 한국의 쌀시장이 개방된다는 소식에 『한국의 농민들은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쌀을 생산·공급함으로써 미국쌀의 진출에 대응해야 할것』이라고 충고했다.【아버클=진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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