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탈진에 방한화터져 곤욕도/미국대원들 “어떻게 그렇게 빨리·”놀라/축하용 샴페인 얼어 기분못내 아쉬움□참가대원 6명좌담
94한국남극점탐험대의 허영호공격대장등 대원 6명은 지난 25일 귀국길에 오르기 전 푼타 아레나스(칠레)의 카보 데 오르노스호텔에서 개선을 앞두고 휴식을 취하며 고통과 눈물, 감격과 환희가 교차된 대장정기간의 순간들을 되새겼다. 이들은 탐험의 출발에서 극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극을 떠나 다시 푼타 아레나스로 돌아오는 그 험난했던 장정을 돌아보면서 『대원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합쳐지고 마음이 한데 뭉쳐져 끝내 극점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의 팀웍은 완벽했다』고 입을 모았다.【편집자주】
▲고인경탐험대장=4명의 공격조대원이 극점에 이르는 순간 너무 얼굴이 부어 누가 누군지 알아 볼수 없어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퉁퉁 부어 진물까지 흐르는 얼굴에서 대장정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격려하느라 극점까지 가져간 샴페인 병이 얼지 않도록 하려고 가슴에 품고 자기까지 했는데 막상 극점도달 순간에 얼어붙어 버리는 바람에 신나게 터져 오르지 않아 아쉽기가 그지 없더군요. (모두 웃음)
▲허영호공격대장=9일 밤에 텐트를 치고 망원경으로 살피는데 극점의 돔이 보이더군요. 나도 모르게 『돔이 보인다』고 소리를 쳤지요. 그 다음날 마지막 25㎞를 걸어가는데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다른 대원들도 짐썰매가 부담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승환대원=우리가 걸어간 거리는 1천4백로 하루 30㎞이상씩 강행군을 했지요. 44일만에 남극점에 이르렀는데 일본탐험대가 작년에 67일 걸린 거리를 무려 23일이나 앞당긴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막상 극점에 도달하니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지더군요.
▲유재춘대원=저는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 초반부터 적응하는데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른 대원들에게까지 부담을 준 것같아 무척 미안합니다. 12월 중순 한국일보 취재진이 탄 세스나기가 공중에서 돌 때는 『저 비행기를 타고 돌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치밀더군요. 다행히 지면상태가 너무 나빠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는 바람에 끝까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웃음)
▲홍성택대원=무엇보다 배고픔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모두 65일분의 식량을 준비했었는데 20여일이나 일정이 줄어들 것같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양을 두 배나 늘렸죠. 그런데도 숟갈만 놓으면 또 배가 고파지더군요.
▲허=홍대원의 배가 보통 사람의 2∼3배나 더 큰데 그 맛없는 꿀꿀이죽마저 배불리 먹을 수 없었으니 고통을 짐작할만 합니다. 홍대원이 우리 중에서 제일 많이 먹어 배설물을 처리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따랐죠. 하지만 영하 20∼30도가 더 내려가는 빙원에서 무려 45분간이나 맨살을 내놓고 볼 일을 보는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5분만 지나면 엉덩이에 동상이 생길텐데 끄떡 없더군요.
▲정길순대원=극점에서 엉망진창으로 부어터진데다 수염에 고드름까지 붙은 대원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베이스 캠프의 ANI사 (남극대륙탐험대 수송전문회사) 관계자들은 올 여름시즌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최악의 날씨라고 했습니다. 날씨때문에 12월 31일부터 1월6일까지 1주일 가량이나 무선교신이 끊어졌을 때는 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김=44일동안 바람이 불지 않은 날은 2∼3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하더군요.
▲유=12월 중순무렵 크레바스지대를 지날 때는 화이트아웃(WHITEOUT)현상까지 겹쳐 무척 힘들었습니다. 날씨가 맑아도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르는 크레바스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한 치 앞도 안 보이니 대책이 안 서더군요. 한 발 가다가는 자빠지고 또 자빠지고…. 저는 걸어가는 동안 계속해서 서정주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외웠습니다.
▲허=구름이 낮게 깔리는 화이트아웃현상이 계속되는 동안엔 탁자위에서 걷는 느낌이었죠. 도대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구별이 안돼 대원들이 자꾸 넘어지고…이러다가 흩어져 길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홍=20여일만에 몰고 가던 썰매의 프레임이 무너져 버렸을 때는 정말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탐험을 통해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칠순을 맞이하시는 홀어머니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어요.
▲유=그 무렵에 저는 방한화의 옆구리가 터져버려 걷는데 애를 먹었지요.
▲고=남극점에 도착했을 때 스콧-아문센기지의 미국요원들이 대원들을 경이의 눈으로 보던 표정이 인상깊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원래 기지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도 제대로 주지 않을 만큼 자기들의 일만 한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올 수 있었느냐』고 놀라며 설명회를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성공을 보장해주는 부적이라도 갖고 다니느냐고 물어오기까지 했지요.
▲홍=극점을 떠나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도 극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3∼4일만 대피하면 될 줄 알았는데 1주일이나 끌었죠. 준비해갔던 식량도 떨어져가고…. 그런데 하루는 외국인 조종사 2명이 서로 다투며 우리 텐트 쪽으로 뛰어와 무슨 일인가 했죠. 「방금 베이스 캠프에서 무선으로 받았는데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이 축하전문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먼저 알려주려고 다투던 조종사들도 신이 났었지만 우리들도 무척 감격했습니다.
▲허=남극점 정복은 희망찬 새해를 맞아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즐거운 선물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성공은 한국일보사의 적극적인 추진과 후원사의 지원등 각계각층의 도움덕분에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이곳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하면서 떠나기까지 몇 차례나 우리 음식을 지어주고 무선교신등을 도와준 곽일영옹 부부와 곽로훈 ·노준씨 가족의 도움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가래떡 25㎏등을 준비해 남극까지 보내준 칠레교민들의 후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유=이번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에 올라가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19일 악천후가 계속되자 ANI사가 등반계획 취소를 강력히 요구해왔지요. 베이스 캠프를 지켜온 정길순대원까지 모두 등반준비를 마쳤는데 빈슨 매시프 일대의 비행기 이·착륙이 불가능하니 포기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와 눈물을 머금고 철수했잖습니까. 그 대신 ANI사친구들은 『이번 시즌 유일한 극점탐험대인 한국대의 44일 극점정복기록은 최악의 기후속에서 세운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있다』고 추어주더군요.
▲고=도전과 모험은 값지고 보람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극점정복에 나선 대원 4명이 혼연일체가 되지 않았다면 그 큰 일을 해낼 수 없었을것입니다. 일정한 목표가 정해지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 돕고 격려하는것이 성공의 요체라는 점을 우리의 귀국보고로 삼도록 합시다.【정리=손태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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