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능력에는 기계와 구별되는 특이한 부분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 예로, 자신의 행위를 틀렸다고 판단하면 곧장 수정하는 일 따위를 들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자신의 말이나 행위에 문제가 생기면 곧 반성을 하고 고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 퇴고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틀렸거나 더 나은 표현이 필요한 부분을 「지워 버리고」 새롭게 고쳐 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창조력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제일 간단하게 지워 버리는 방법은 금을 덧그어 버리거나 새까맣게 덧칠을 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표현물의 미적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사람은 그 틀린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 도구를 창안해 냈다. 이러한 도구를 「지우개」라고 한다. 보통 연필로 쓴 것을 지우는 「고무지우개」가 먼저 연상되지만, 분필로 쓴 것을 지우는 「칠판지우개」도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등장한 것이 「수정액」이라는 것이다. 주로 타자를 칠 때에 쓰이는 것으로 일종의 횟물을 이용하고 있다. 이것이 더욱 발전된 것이 요즘 학생들이 많이 쓰는 일명 「화이트」라는 액체 지우개이다. 원뜻은 말할 것도 없이 영어로 그저 「하얗다」는 말이다. 무척 창의력이 부족한 말이 아닌가 한다.
말이 좀 길어지는 흠은 있으나 이것을 그냥 간단하게 「물지우개」라고 한다면 다른 종류의 지우개와 일종의 계열화가 이루어져 유용한 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재료의 액체를 이용한 것이 개발되면 손쉽게 「횟물지우개」처럼 그 재료의 이름을 따서 새 제품의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김하수 연세대 국문과교수>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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