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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학(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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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학(1000자 춘추)

입력
1994.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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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수는 지난해 11월 파리유학을 떠나기 전에 사진첩들을 정리하면서 나의 옆에서 엉엉 울었다. 『여보, 왜 그래. 왜 이렇게 슬피 우는거야』하고 다그쳤다. 아내는 계속 흐느끼면서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옛날 생각들이 나서요…』하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울고나서 이번에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여보 미건화랑 백회장에게 파리로 떠난다고 인사하러 갔을 때 내가 공부하러 간다니까 당신을 멋진 분이라고 칭찬하데요. 백회장 뿐 아니라 모두 그래요』하며 울음을 멈췄다.

 미건화랑의 백회장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의 누님이다. 

 나는 아내를 포근히 안으며 말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유학 보내는것으로 멋쟁이가 되거나  바보가 되는것은 모두 당신에게 달린거야. 당신이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면 그 때는 내가 진짜 멋쟁이가 될 수도 있지』

 『여보, 고마워요. 내가 꼭 당신을 멋쟁이로 만들께요』

 그리고 아내는 떠났다. 아내는 파리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걸어온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전화값이 많이 나온다』고 가끔 가다 싫은 소리를 하지만 아내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것은 돈이 암만 들어도 싫지 않다는것을 실감하는 어제 오늘이다.

 내가 기를 쓰고 나이가 42세나 차이가 나는 아내를 파리에 유학보낸 이유는 간단하다. 언젠가 TV 대담프로에 나갔을 때 『부인에게 줄 유산같은것은 준비되어 있는지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평소 품고있던 나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던것이다.

 아내를 파리로 유학 보낼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라 믿는다고도 말했다.

 나의 작품들은 누가 미술관을 지어주면 고스란히 내어놓는다고 공약한 바 있다. 따라서 나의 작품들은 유산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땅투기를 안했기에 부동산이란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 한 채 뿐이다. 또 그림을 팔아 유산으로 쓰는것을 아내도 원치 않고 있다. 그리하여 결정된 유학이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에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미안해요 사랑해요』 라는…. 김흥수<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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