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연극의 거장을 잃었다. 지난 22일 타계한 장 루이 바로야 말로 프랑스와 세계연극의 거인이다. 거장이란 과장된 영화광고에서 처럼 함부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 지고의 경지에 이른 예술가에게만 보낼 수 있는 찬사이며 헌사인것이다. 배우이자 연출가인 바로, 그의 이름과 예술은 거장으로 손색이 없다.◆그는 프랑스 밖에선 일찍이 무언극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국내선 고전·현대·전위연극의 명인으로 더욱 유명하다. 21살의 나이에 연극에 입문해 배우가 되었다. 30살에 코메디 프랑세즈에 합류하며 영화에도 나오고 첫번째 연출작업으로 천재성을 번뜩였다. 같은 배우인 르노와 결혼해 르노―바로 극단을 만들었다.◆반세기에 걸친 연극생활에서 다룬 작품은 다양하다. 몰리에르, 셰익스피어에서 이오네스코, 베케트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특히 폴 클로델의 작품에서 보인 「완전연극」의 시도와 카프카의 작품공연은 깊은 감동과 인상을 남겼다. 기억할 출연작을 꼽으면 「천국의 아이들」(「인생유전」) 「가장 긴 하루」「바렌의 밤」등이 있다.◆1968년 파리학생소요 사태 때엔 국립인 오데옹극장의 극장장 자리에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학생을 지지한 연설이 당시 문화상 앙드레 말로의 격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는 오히려 그의 인기를 높였을 따름이다. 많은 영화에 출연하는 가운데 생애의 후반은 오로지 연극에만 몰두하고 헌신했다.◆프랑스의 문화예술과 역사의 자산은 대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거장의 출현이다. 장 콕토가 비운 자리, 사르트르가 떠난 뒤끝을 새로운 거장들이 메우고 채워준다. 장 루이 바로 이후는 누구일까. 프랑스의 예술은 허전할 날이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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