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 했다. 다만 궤적만 달리할 뿐이라 했다. 반휴화산처럼 잊을만 하면 폭발,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 대형금융사고도 마찬가지다. 「박영복사건」―「이철희·장령자사건」―「김철호사건」―「상업은행 명동지점사건」―「장령자사건」등 충격의 금융사고들은 규모와 대상의 차이가 있을뿐 구성은 비슷하다. 은행원의 권력과 예금실적에 약한 체질,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상어」(사기꾼)의 허세와 기만, 배금주의와 투기발호의 사회적 분위기등이 한데 어우러져 엮어내는 금융사기드라마다. 특히 이번 「장령자사건」은 지난해 10월에 도입된 금융실명제가 지켜졌더라면 예방될 수 있었던것. 그러나 김영삼정권이 「개혁중의 개혁」이라고 자긍하고 있는 이 파란의 금융실명제가 구멍과 허점이 많은것이 드러났다. 온화한 성품의 홍재형재무가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중요한것은 금융창구에서 또 실명제위반사례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며 『이번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고 했다. 관련 은행원들은 「장」여인의 「하수인」이 돼 부정대출등 원천적인 부정행위를 자행하는 과정에서 차·도명 및 실명 미확인등 금융실명제위반을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을것이다. 사실이 그렇게 나타나고있다.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동화은행 삼성동출장소와 삼보상호신용금고가 장령자씨가 조성해온 1백33여억원의 예금을 받으면서 본인 실명확인을 하지 않았다』는것. 즉 동화은행의 전삼성동출장소장 장근복씨는 지난해 11월초 장씨가 끌어온 자금 1백32억원을 5명의 이름을 도용, 양도성예금증서(CD)로 예치했다. 또한 삼보금고는 장씨 예금 1억1천2백만원을 장씨소유의 기업 대화산업직원 5명의 이름으로 분산하여 받았다. 삼보는 또한 장씨측에 모두 93억원(이중 42억원반환)을 대출해주면서 장씨 아닌 14명의 이름을 차·도명했다. 금융실명제가 무기력하다는것이 드러났다. 이 제도의 도입 당시에도 차명의 실명화 실적이 극히 저조했다. 예금과 주식등이 다 마찬가지였다. 30대 재벌그룹등을 포함하여 대기업경영주와 그 인척들 사이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또한 증시와 사채시장의 소위 「큰 손」들도 차·도명으로 빠져나간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금융기관의 일선창구가 「대어」들의 탈출에 자문역할을 했다는것은 알려진 비밀. 큰 예금주와 일선금융창구사이에는 사업상 「특별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 큰 예금을 유치하거나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예금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것이 관행이다. 인센티브의 정도가 문제다.
욕심을 내다보면 법과 관례의 수준을 넘는다. 화를 가져온다. 장씨사건에 적극적으로 관여한것으로 나타나있는 동화은행의 장근복 전삼성동출장소장, 서울신탁은행의 김칠성 전압구정동지점장등은 장씨의 거액예금이나 그 약속을 믿고 금융실명제위반, 불법적인 어음지급보증(50억원), 타인예금의 불법인출(30억원)등 규정·규칙을 위반한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10개 금융기관 11개 점포를 특별감사한 은행감독원은 무려 금융실명제위반, 동일인대출한도, 청탁대출등 10여가지 탈법사례를 적발했다. 금융기관에서 상정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불법·변칙거래가 다 동원됐다는것이다. 과거에도 대형금융사고 때마다 금융기관장 및 기관에 대한 문책, 업무규정 및 감독강화등 대책이 나왔다. 이번에도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할것이다. 그러나 대책위반의 악순환은 되풀이 되어온것이다. 이것이 개선되자면 금융계의 풍토가 쇄신되고 금융종사자들의 직업윤리가 높아져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정부로서 우선 급한것은 금융실명제실시에 대한 규정 및 감독강화다. 현행규정은 실명제위반에 대해 전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않고 관련 은행관계자에 대해서만 5백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 위반에 대한 처벌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감시·감독의 강화도 뒤따라야겠다. 어렵게 착수한 금융실명제가 허수아비가 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금융자율화의 추세가 후퇴되어서도 안되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