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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질펀한 민중언어 놀이판/흥부전(다시 보고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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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질펀한 민중언어 놀이판/흥부전(다시 보고싶은 책)

입력
1994.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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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 심술·흥부 가난 묘사 압권 소설 「흥부전」은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로서, 우리가 이미 다 잘 알고 있듯이, 제비의 감은보사(감은보사)설화를 바탕으로 한것이다. 따라서 이 흥부전은 우리 한국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형상화된 선악의 인과사상 내지는 세계의 이원성의 원리 그것이다. 원천적으로 악의 존재를 독자적인것으로 보려하기 보다는 선의 결여로 보려는 강한 전통을 지닌 문화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은혜와 복수라는 매우 상이한 가치를 통해서 인과의 두 가닥은 물론 선악의 상대성이 명료하게 대칭화되어 있다.

 놀부와 흥부란 두 형제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세계와 선악의 양면표상으로 보려함이 두드러지지만, 「흥부전」을 현실적 사회소설로 보려는 시각에 있어서는 빈자 대 부자의 계급적 대립의 양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과 아우를 지금까지처럼 전혀 별개의 대립적인것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하나로 볼 수는 없을까. 문학속에서 형상화 되고있는 형제나 쌍둥이는 실은 별개의 존재이면서도 하나속에 존재하는 두개의 속성―이를 서구문학에서는 흔히 「도펠갱거」 또는 「더블」이라고 일컫는다―이다.

 그래서 흥부와 놀부는 선악과 정사시비가 이분법적으로 갈라져서 하나는 옳고 하나는 나쁜 두 대립세계나 가치체계의 표상으로 봄도 정당하지만, 하나 즉 개아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중성의 표식으로서 이해되는 측면도 있음직한것이다. 요컨대 흥부전은 이원성의 구조다.

 「흥부전」은 이와함께 특유한 수사론적 측면에서 주목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바흐친이 그의 「라블레와 그의 세계」에서 중세 카니발의 민중축제에 내재하는 웃음의 성격과 이미지를 일러서 이른바 「그로테스크 저널리즘」이라고 명명하고 있듯이, 「흥부전」은 공식문화와는 먼 장마당의 속어와 삶의 갱신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민중적인 웃음이 질펀하게 용해되어 있는 해학적인 수사학의 보고인것이다. 그야말로 공식문화의 그것과는 달리 수다스런 재담 늘어놓기의 묘사비유방법, 턱없는 과장의 어법, 독특한 부실또는 결손예찬의 기법등으로 짜여진 다변적인 수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놀부의 못된 심술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초상난데 춤추기, 불붙는데 부채질하기, 해산한데 개닭잡기… 우물밑에 똥누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호박에 말뚝박기…」등과 같은 무려 20여개의 수다스런 늘어놓기를 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흥부의 가난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새앙쥐가 쌀알을 얻으려고 밤낮 보름을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토시 서서 파종하고 앓는 소리 동리 사람이 잠을 못자니…」란 정도로 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문장 수사학의 중요한 한 단면이랄 수 있는 부실 또는 결손미의 예찬, 즉 「목만 남은 헌 버선에 뒤끝없는 짚신신고」라든가 「편자없는 헌 망건에 박 쪼가리 관자달고… 짓만남은 중치막, 동강이은 헌술대」등과 같은 모자람의 묘사―나는 이를 부실예찬이라고 명명한다―가 두드러지게 제시되어 있는것이다. 한마디로 「흥부전」은 민중언어의 놀이판이다.

 따라서 「흥부전」의 가치는 선악 또는 인간의 이원성을 드러내줌과 함께 웃음의 해학과 관련돼 있는 우리의 그로테스크의 수사학이 지닌 미학적인 가치라고 할것이다.<이재선·서강대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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