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소설 미흡한 무대화 근간 여성주의문학을 대표하는 두편의 소설이 동시에 무대에 올려져 주목을 끈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각각 동숭동과 신촌에서 공연되고 있다.
두 작품의 공연은 여성주의문학의 범위와 소재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어 일단 흥미롭다. 그러나 이들 소설의 무대화는 소설의 서술적 특성을 연극의 독특한 경험으로 전환하는데 있어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것은 각색과정에서 원작의 극적 요소가 무대 위에서 충분히 재구성되지 못한데 기인한다.
두 소설은 모두 주인공들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소설속의 외적 사건진행보다 그것을 체험하고 분석하는 주인공의 의식변화와 흐름이 전체구성의 틀인것을 보여준다. 「무소의…」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심리적 실상을 주인공 혜완의 눈으로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결국 누추하지만 결연한 선택을 하기까지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기본적인 틀로 하고 있다면 「나는…」에서는 강민주가 거침없고 자신만만한 독백으로 독자들을 자신의 사고와 의지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무대에 올려진 「무소의…」에서는 혜완의 내면갈등이 배제되고 대신 외적 사건이 나열되고 있다. 세 친구의 관계와 그들 어머니들의 삶을 통한 여성문제의 통시적 고찰등은 모두 사라지고 몰이해하고 파렴치한 남편들에 의해 희생돼 과거 패기만만했던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가슴아파하는 맥풀린 여성들만 무대위에 남게된다. 혜완의 의식을 묘사하는 참신한 언어들도 일상적인 대화로 대체돼 진부하게 들린다.
이에 반해 연극「나는…」은 강민주의 독백을 사이사이에 삽입함으로써 소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을 강민주의 사고안으로 몰입하게 한다. 동시에 원작의 강렬한 언어들도 무대위에 옮겨져 극에 박진감을 더해준다. 그러나 강민주의 시점에서 팽팽하게 쌓여지던 긴장감과 내면의 갈등은 후반부에 들어 그녀의 하수인 황남기의 질투가 극의 주요 동인이 되면서 슬그머니 사라지고만다. 그녀가 남성의 상징으로 파멸시키고자 했던 백승하에 대한 적대감과 복수심이 이해와 사랑의 감정으로 변화하는것이 소설의 극적 요소라면 연극은 이러한 내적 변화가 충분히 전개되지 못하고 황남기의 질투에 초점이 옮겨지면서 어색한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강민주는 다만 질투심의 희생자로 관객에게 남게됐고 남녀의 대립에서 화해를 지향하는 원작의 주제도 희석되고 말았다.
두 작품 모두 아쉬움이 남는 무대다. 그러나 조만간 여성주의의 성숙한 메시지와 그것을 담아 표현하는 양식이 서로의 효과를 상승시킬 수 있는 좋은 희곡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가능성은 금지된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무한히 열려있다. 여성문제는 인간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것이고 그것은 곧 연극예술이 무대위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주제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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