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동땅 위약금마련에 어음남발/밀리는 결제못막아 변칙인출까지/ 장령자씨(50) 거액어음사기사건은 이미 「큰손」으로서의 명성을 상실한 장씨가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데서 빚어진 사기극이었다.
○비정상 대출관행문제
장씨는 92년 3월 가석방이후 1천억원대 이상으로 환가되는 부동산과 골동품을 발판으로 재기를 노리다 예상치 못한 실명제 시행과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한 새로운 경제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구습을 답습하다 12년만에 사기등 혐의로 또다시 구속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껍데기뿐인 회사를 인수, 어음발행의 창구로 이용하거나 사채시장을 끼고 예금유치에 혈안인 은행지점장과 신용금고대표들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한 수법등은 82년 장씨부부가 주도한 거액어음사기사건때와 거의 흡사하다는 게 수사검사들의 말이다.
다만 권력의 후광을 잃어버림으로써 사기의 「격」이 떨어지고 은행장급 대신 지점장급이하 인사들을 이용한 점이 다를 뿐이다.
검찰은 서울신탁은행 압구정동지점에서의 변칙예금인출 사건과 삼보상호신용금고로부터 변칙대출 받은 사건은 장령자씨 94년판 사기극의 성격을 극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씨는 정상적인 자금마련이 어렵자 사채업자 하정임씨(58·여)가 예치한 30억원을 무단인출하고 5일뒤에는 장근복 당시 동화은행삼성동출장소장이 변칙배서한 유평상사발행 50억원짜리 어음을 담보로 제공하고 삼보상호신용금고로부터 대출을 받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이과정에서 장씨는 인출 또는 사기대출을 위해 사채업자등을 동원, 예금을 예치케 함으로써 자기신용도를 한껏 높이는 예비적 장치까지 마련해 두었다.
이 예비적 장치를 십분 활용, 장씨는 『채권을 매입하면 돈을 벌 수 있다』『채권을 매입한 즉시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해 대출을 받은뒤 이돈을 다른 용도에 사용했다는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문제는 장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비상수단을 통해 마련한 돈을 어디에 사용하려 했느냐는 점이다. 검찰은 이같은 의문에대한 실마리를 지난해 부산화학과 추진했던 장씨 소유의 부산 범일동 2천여평부지의 매매계약건에서 찾고 있다.
장씨는 이무렵 이벤트꼬레 대표인 사위 김주승씨(34)를 내세워 지난해 7월 부산화학측과 체결한 부산 범일동소재 부동산매매계약이 성사되지 못함에 따라 위약금을 포함해 98억원을 돌려줘야 하는등 극도의 자금압박을 받고 있었다.
○실명제등 변수못넘어
이벤트꼬레사 명의로 어음을 발행,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이 어음을 결제할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장씨는 자금능력이 없이 이리저리 어음을 돌리다 범일동 부지매매계약건으로 촉발된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변칙인출과 변칙어음유통이라는 비상사기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장씨가 삼보상호신용금고로부터 77억5천만원을 사기대출받은 시점이 지난해 10월21일부터 10여일 사이에 집중되고 서울신탁은행에서 변칙인출한 30억원중 21억원을 이시기에 이벤트꼬레에 송금한 사실등이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부동산 매매계약건은 장씨가 조성한 자금 사용처의 일부분만을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남의 돈만으로 부도 구멍를 메우는 과정이 연속되면서 부도액은 눈덩이처럼 커진 셈이다.
그렇다면 장씨가 자금난을 겪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점에 대해 검찰은 1천억원대라는 보유재산 대부분이 82년사기사건 여파로 근저당 또는 가압류 된데다 부동산경기침체 실명제실시등 경제현실에 변수가 겹쳤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재산거의 가압류상태
제주 성읍목장 2백98만여평의 부지에 디즈니랜드 골프장등을 건설하고 경주 땅에 온천단지를 세우겠다는 거창한 사업구상을 세우긴 했지만 달라진 주변여건으로 인해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기가 어려워 자금변통에 실패함으로써 사기극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었다는것이다.
장씨는 불법대출받은 돈으로 30억원대의 골동품을 매입하기도 했지만 실명제 실시로 원매자들이 자금출처를 꺼리는 현실에서 골동품매매마저 여의치 않았던것도 사기사건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한편 이번 사건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비정상적인 대출관행이 또다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금을 유치해줘 개인신용도를 높인뒤 변칙적으로 돈을 대출받는 고전적 수법이 이번에도 그대로 통했다. 지난 82년 이·장거액어음사기사건후 대형 경제범죄를 예방하기위해 제정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9조에는 예금을 유치해주는 대가로 대출받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치열한 은행간의 예금유치경쟁으로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는 점이 장씨의 사기극을 가능케한 토양을 제공해 주었던것이다.【김승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