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폐수, 축산 폐수, 가축 분뇨들이 혼탁하게 뒤섞여 부패의 시궁창을 이루고 있는 어느 강물의 끔찍한 천연색 사진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언젠가 어느 강연에서 들었던 시인 김남조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왔다. 선생은 첫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가서 수도꼭지를 싸 하고 틀었을 때 그 맑고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의 청청한 힘에서 우리의 더러움을 정화시키고 무기력한 목숨을 생동케 하는 푸른 생명력을 느낀다고 말씀했다. 잠시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상상해 보도록 하자. 첫새벽에 일어나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하룻밤 동안 막혀 있었던 수도꼭지에서 와아와아―하고 어두운 수도관을 타고 올라오는 맑은 물의 청청한 힘을. 어둠의 상수도 파이프 속을 밤새워 기어 오르고 있다가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맑게 쏟아져 내리는 물의 그 신선한 탄력과 지고지순한 맑음은 밤새워 무슨 절망 때문에 삶의 의욕을 포기한 사람에게조차도 힘찬 생명력을 나눠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밤새 막혀있던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져 내리는 첫새벽의 맑은 물은 바로 그 자체가 생명의 소리요, 우리의 싱싱한 동맥을 다시 뛰게 하는 우주의 음악이요, 잠들었던 우리의 육체 안에 다시 피를 뛰게 하는 약동의 첫소리인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물이란 물질이면서 영적인것이요, 육의것이면서 동시에 심의것인, 즉 정신문화에 가까운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91년 페놀 사건에 이어 다시 서울시 수돗물 중금속 파동, 모든 식수원의 오염과 부패, 게다가 낙동강 수계에서 암, 백혈병, 천공증등을 일으킨다는 암모니아성 질소, 벤젠, 톨루엔등이 검출되었다는 보고에 이르러서는 밥맛은 둘째치고 살맛 자체가 소멸되어 버리는것을 느끼지 않은 국민은 없었으리라.
헌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더니 이건 무슨 수도꼭지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게 죽음을 배급받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장 생명에 가까워야할 식수 속에 죽음의 독소가 평등하게 배급되고 있었다니 아무리 순하디 순한 양민이라 할지라도 『도대체 나라라는것은 왜 있나?』 『우리에게 정부란 무엇인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그러나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혼자 다 처리하면서 자급자족의 시대처럼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공적인 우리의 살림을 맡아달라고 정부가 있고 공무원이 있고, 우리의 환경을 생명의 환경으로 항상 보살펴 달라고 환경처가 있는것이며, 또한 그 살림을 잘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 감사원이 있는것이 아닌가.
이 모든 제도와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조건인 물과 공기가 세계 최악에 가깝다는것은 행정부의 존재 자체를 의심케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도 집권당인 민자당이 『환경오염에는 국민의 책임도 적지 않다』라는 식으로 우리 모두 공범자라는,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문제의 초점을 흐리는, 시궁창에 물타기식 발언을 하는것을 보면 우리는 앞으로 한참을 더 죽음의 물을 마시게 되겠구나라는 불길한 예감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나라의 환경을 생각한다고 해도 요리 안하고 빨래 안하고 세수 목욕 안하고 살아갈 수야 있는가. 오폐수 처리장을 막대한 돈을 들여 지어놓고도 하수관을 그에 연결하지 않아 그대로 축산폐수나 분뇨들이 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데, 경제성장을 위해 공장폐수가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것을 알고도 슬쩍 눈감아 준다는데, 살기 위해 요리하고 빨래하고 세수목욕하는 최소한의 오염(?)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가정에게 공범자의 영광을 나눠준다는것은 정말 억울한 것같다.
썩은 물을 너무 마셔 우리 모두의 머리가 썩은 탓인지, 우리의 몸 안에 들어가 피가 되는 수돗물에 암유발 요소가 들어있다고 해도 『수돗물이요? 제정신이라면 누가 수돗물 마시겠어요. 나 그거 안마신지 오래 됐어요』라고 말하는 한 아주머니의 자포자기가 정말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나라에 요구해야할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상실해버린 「죽음과 부패에 심신이 너무 길들어진」 끔찍한 염세주의자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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