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도덕만으로 해결할 시기는 지나”/양로시설·연금 등 적극적 복지책 필요 14일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재판장 정덕흥부장판사)의 노모 부양료 청구소송 판결은 노인부양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는것을 일깨워 주었다. 노인부양문제가 더이상 도덕이나 윤리를 강조하는 것 만으로 해결할 수없고 가정과 정부 사회 민간단체등이 모두 나서야 한다는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소송 당사자인 김모씨는 며느리와 불화로 별거하면서 생활이 어려워 부양료를 청구한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부모를 모시는 가정에선 한번쯤 부딪치는 문제이다.
이 사건을 두고 소송 당사자는 물론 전문가와 일반인들 사이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있다. 연세대 윤진교수(심리학과·한국노년학회)교수는 『부모가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자식은 생활이 아무리 어렵다하더라도 부모를 정성으로 모시는것을 당연시하는 우리 풍속이 이번 소송으로 무너진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고 『아무리 가정내 불화가 있어도 자식이 끝까지 어머니를 책임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번 경우는 자식에게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책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시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김정하주부(38·경기 광명시 철산동)는 의견을 달리한다. 시부모를 모시고 생활하면서 느끼는것은 윤리적인 당위성으로 감당하기에는 힘든 현실적인 상황이 많다는것이다. 고부간의 갈등, 용돈문제, 자녀교육문제, 생활의 어려움등으로 부모자식간에 불신이 생기고 서로를 방기하는 상황까지 이르른것으로 진단한 김씨는 『노모가 진지한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 법에 호소한것은 문제가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현행법률로는 노부모가 생활능력이 없고 자식이 부양능력이 있다면 자식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것으로 돼 있다.
법을 통한 해결은 대부분 가정을 보호하기보다는 파괴하고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간다. 김진국변호사(서원합동법률사무소)는 『핵가족화의 영향과 이번사건이 계기가 돼 부양료청구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날것』으로 전망하고 『가사문제를 가정내에서 해결하지 않고 법에 의존하면 가족구성원간의 불신만 조장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문제로 부각된 노인부양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해이해진 효도의식과 윤리의식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는것이 이번 판결을 지켜본 일반시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식들도 언제인가는 부모처럼 늙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노인역시 노후는 예전처럼 장남을 비롯한 자녀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없는 사회상황임을 인식하고 노후자금등을 조성해 노년을 대비하는 생활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않다.
무엇보다도 노인부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장기적인 노인복지정책수립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것이 일반국민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현재 양로시설은 1백23개소에 수용능력이 7천2백39명에 불과할 정도로 노인복지가 낙후돼 있다. 노인복지법개정, 실버타운조성, 노인연금활성화등을 통해 노인들이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노후를 보낼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대한노인회 이병하회장은 강조했다. 노인부양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선 민간단체의 지속적인 윤리회복운동과 함께 기업들의 노인시설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것이다.【배국남기자】
◎부양료 청구소송 사건개요/아들부부와 불화… 별거 생활비 요구
서울가정법원은 14일 김모씨(66)가 아들 김모씨(43)부부를 상대로 낸 부양료 청구소송판결공판에서 「아들부부와 불화로 집을 나와 따로 살고있는 노모가 생활유지능력이 없다면 아들부부에게 부양의무가 있기 때문에 아들부부는 매달 어머니에게 생활비로 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본보 1월15일자 27면). 어머니 김씨는 지난79년 결혼한 아들부부와 함께 살아왔으나 아들부부와의 불화가 잦아지면서 집을 나와 친정쪽 친척집을 전전하다 92년 4월 부양료청구소송을 냈었다.
당사자들의 주장은 크게 다르다. 어머니 김씨는 며느리가 자신을 박대해 별거하게 됐고 그이후 아들부부가 전혀 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며느리 신모씨(38)는 빠듯한 살림때문에 어머니에게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해드리기가 어려웠고 자신의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태도와 어머니의 넉넉하게 쓰고 마시자는 생활태도가 갈등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가정법원에는 이와 유사한 부양료청구소송이 2건이 더 접수돼 있는데 우리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이같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소송사태가 줄을 이을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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