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의 대영제국이라지만 왕년에 세계를 제패했던 관록대로 영국의 외교와 정보활동은 세계 제1급 수준으로 소련도 영국을 무시하지 못했다. 영국의 3대정보기구는 대외첩보를 맡고있는 MI6, 국내의 테러방지와 방첩을 담당하는 MI5,위성과 전자감시로 도청·암호해독등을 하는 런던부근에 있는 전자감시국(GCHQ)이다. 특히 앞의 두 기구는 본부와 요원들이 철저히 가려져있다. 1947년 OSS(전략활동국)를 재편, 발족된 미 CIA(중앙정보국)의 역할과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것이다. 워싱턴에서 멀지않은 랭글리의 본부가 오늘날 제한적 관광코스가 되고 있으나 국장등 일부 간부들 외에는 기구현황, 요원명단, 예산규모, 활동내용등이 일체 베일에 싸여있다. 70연대중반 CIA가 설치규정을 어기고 반전주의자, 극렬분자, 각계 요인등을 미행, 도청한것과 오랫동안 여러 나라의 쿠데타를 주도하고 각국 지도자암살을 추진한것등이 드러나 여론의 질책과 상원정보위의 추궁을 받는 곤욕을 치렀으나 여전히 미국을 지탱하고 세계를 감시하는 세계 최대의 기구로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 독일의 연방첩보부(BND) 국내보안기구(BFV), 불의 대외보안본부(DGSE)와 국가감시본부(DST), 일본의 내각조사실등도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속에 일절 노출되지 않은채 방첩과 첩보 및 테러방지등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정보기관은 5·16직후 미 CIA를 모방해 설립한 중앙정보부로 국가보위를 위해 대공 및 국제적 정보를 수집, 활동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보부는 출발직후부터 국민을 속이고 엉뚱한데 손을 대는등의 과오를 저질렀다.
불법적으로 정보부가 공화당사전조직을 주도하고 증권파동에 개입했으며 야당감시와 분열등 정치를 위시한 각 분야에 대해 사찰하는 「무서운 기구」 「권력기관」으로 커졌다. 특히나 상당수 요원들이 공공연하게 신분을 과시하고 직권을 남용함으로써 이 기구는 국가보위기구가 아닌 정권유지기관으로, 후진국형 정보기관으로 국민위에 군림했던것이다. 이 때문에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온 대공 및 해외분야요원들의 활동성과와 이미지까지 얼룩지게한 것은 한심한 일이다. 정보부는 12·12후 신군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했으나 활동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 국민의 불신감만 증폭시켰던것이다.
89∼90년 공산권의 붕괴에 의한 냉전체제의 해소로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재빨리 변신을 서둘러왔다. 데탕트시대에 걸맞게 경제정보 산업정보 수집쪽으로 초점을 맞춘것이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CIA총책 제임스 울시국장이 작년 2월 상원청문회서 『우리 앞에 과거 소련과 대치할 때보다 더 어려운 경제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커다란 농 한마리(구소)를 잡았으나 현재 그보다 더 위험한 수십종의 독사가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살고있다』고 한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문민정부가 출범한후 안기부가 내부개혁과 함께 『정치사찰을 일절 중지하고 고유업무에 진력하겠다』고 선언, 탈바꿈을 시도한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안기부를 보는 상당수 국민의 눈은 아직도 회의적인게 사실이다. 그만큼 불신이 뿌리깊은것이다.
물론 안기부는 작년말 법개정으로 기능이 크게 견제받게 됐다. 수사권 축소와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강화로 대공수사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었고 보안감사와 관계기관대책회의가 폐지되고 안기부를 감독할 국회정보위가 신설되는등 과거에 비해 기능이 약화된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사찰을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란 이미지를 벗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는 전기로 삼아야 할것이다.
안기부가 김영삼대통령에게 행한 새해업무보고에서 경제정보수집을 통해 국제경쟁력강화의 첨병이 되는 한편 국가산업기밀과 첨단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 그리고 수집한 각종 산업정보를 민간기업등에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은 기대해볼만 하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안기부는 첫째 북한과 국제관계 및 산업정보수집 외에 마약 테러환경등에도 대처해야 하고 둘째 전방위적인 각 분야에 걸쳐 우수한 엘리트들을 육성 확보하는 전문가집단이 되어야하며 셋째 미·중·러시아·일·영등 선진국의 정보기관들과 공조체제를 강화하는것이 긴요하다. 특히나 북한관계정보수집과 함께 장차 북한내부의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효과적인 대응, 수습계획도 다각적으로 마련을 서둘러야할것이다.
이제 안기부는 대변신―대변화를 촉진해야 한다. 참으로 국가보위와 국익확보등 본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해야할것이다. 국민은 안기부의 변화를 지켜볼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