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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대신(우리말 바로쓰기)

입력
1994.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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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대화」라고 하는 행위를 보통 무척 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대화에는 인간적으로 일정한 불균형 관계가 놓여 있어서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평등하고 균형잡힌 대화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힘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 성격 급한 사람과 느긋한 사람 등의 차이가  대화의 내용을 한쪽으로 기울게 하거나 특정한 사람이 지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힘이나 권력의 차이가 큰 사람들이 서로 균형잡힌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으레 한쪽은 명령이나 분부를 내리기 쉽고, 다른 한쪽은 복종하거나 거역하는 행위를 저지르기 쉽다. 안일무사를 추구하는 사람은 손쉽게 강한 사람에게 순종하는 길을 택한다. 토론과 합의를 중시하는 민주적인 사회에 걸맞는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강한 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예,예」하면서 순종만 하는 사람을 언론에서는 보통 「예스맨」이라고 일컫는다. 그저 굽실거리면서 긍정하는 답변만 한다는 것을, 문법적으로는 좀 이상한 표현을 통하여 풍자스럽게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대개 권력의 주변부를 비판적으로 묘사할 때에 많이 쓰인다.

 우리 말에도 이에 해당하는 말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풍자스러움이 더욱 뛰어나다. 그런데 우리 국어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아마도 새 사전이라는 것이 옛 사전을 베껴 내는 데에 급급한 탓이 아닌가 한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에게서 들은 수 있는 말로 「지당대신」이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 앞에서 그저 「지당하옵니다」하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게다가 왕조 시대의 대표적인 상하 관계를 나타내는 「대신」이라는 말이 덧붙은 것이 정말 일품이다. 「굽신굽신」이라는 말이 덧붙지 않아도 허리를 얼마나 굽히면서 비굴한 표정을 짓는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외래어라고 해서 늘상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외래어는 그 말이 생겨 나서 품게 되는 뜻과 말맛이 아무래도 이질적이기 마련이다. 우리 풍토에서 생겨 나고 무르익은 낱말들을 잘 찾아 보면 기본 의미뿐만 아니라 뜻밖에 풍부한 감성까지 담아 주는 말이 적잖게 보인다.<김하수 연세대 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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