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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목사/이 부총리/통일노선 달라도 “40년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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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목사/이 부총리/통일노선 달라도 “40년 지기”

입력
199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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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통일기도 함께… 가족과도 절친/이 부총리,빈소찾아 고인유덕 기려 정부의 「통일정책 사령탑」인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과 「재야 통일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 문익환목사는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으나 40여년전 한 교회에서 같이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를 올렸던 막역했던 사이. 이부총리는 19일 아침부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 이날 하오 한신대 빈소를 찾고 미망인 박용길씨등 유족들과 손을 맞잡으며 고인의 유덕을 기리고 슬픔을 함께했다.

  이부총리는 문목사의 운명소식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중의 하나. 이부총리는 전날밤 TV뉴스를 통해 문목사의 소식을 듣고 밤새 기도를 드렸다는것. 이부총리는 이날 아침 통일원에 등청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신대 빈소로 조전을 보냈다. 조전은 기도내용을 간추려 손수 작성한것.

 『고 문익환 목사님의 영혼을 하나님께 위탁하오며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6·25 전쟁발발 직전 대학 3학년이던 이부총리는 문목사의 부친 문재린목사(85년작고)가 운영하는 신암교회(경동고부근)에 다녔다. 목사부부는 물론 8살위인 문익환, 비슷한 연배인 동환씨등 3남2녀와 모두 절친했다. 서울대사대를 다니던 이부총리는 문목사의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을 교회의 일요학교에서 가르쳤다. 47년 신학대학을 졸업, 이미 젊은 목사였던 고인은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깊은 순수한 분」으로 이부총리에 기억되고 있다.  부친 문재린목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고 한다.

 같은 실향민이었던 이들은 매주 통일을 위한 기도를 했지만 그 방법을 둘러싼 이견이나 논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교유는 이부총리가 미국유학길에 오르던 55년까지 계속됐고 귀국후 고인과는 만남이 뜸했지만 동환씨등 동생과는 사귐이 계속됐다. 

 고인이 복역중이던 89년부터는 이부총리가 방송위원회 심의위원장으로 취임, 심의위원이던 고인의 장남호근씨(48)와 인연이 다시 생기기도 했다. 이부총리는 그때마다 옥중에 있는 고인의 안부를 호근씨에게 챙겼다. 그러나 통일방법론에 대한 두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문목사가 타계하기전, 주변에서 그에관한 얘기가 나올때마다 이부총리는『내가 언젠가는 만나야할 사람인데…』라고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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