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화단 도전 “순수 국내파”/올 7개 유명화랑 순회전 대역정/파격위주 낯선그림 세계시장 낯익히기 우루과이 라운드(UR) 타결로 세계의 문화전선이 더욱 뜨거워졌다. 문화개방의 시대를 이기는 길 중의 하나는 세계의 문화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서 우리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상품화하는 길일 것이다. 올해 세계로 진출해서 스스로 국제화 시대를 열어 갈 문화예술인들과 그들의 작업을 각분야별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서양화가 고영훈씨(42)는 올해 유럽과 미국의 7개 유명화랑에서 개인순회전을 갖는다. 화단사상 젊은 작가로서는 처음 갖는 대역정이고, 그가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 출신의 순수 국내파 화가라는 점에서도 큰 경사라고 말할 수 있다.
순회전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리빙 아트화랑(4월)을 시작으로 로마의 갤러리아화랑·일 코르딜화랑(5월), 런던 혹은 암스테르담의 화랑(6월), 뉴욕의 마리사 텔레화랑(9월), 디트로이트의 오케이 헤리스화랑(10월), LA의 화랑(11월), 마이애미 마리사 텔레화랑(95년1월) 등으로 예정돼 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정교하고 인상적이다. 반듯하게 펼쳐진 책 위에 돌이 놓인 그의 그림을 한 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가장 지적 상징물이기도 한 책 위에 하필 돌이 놓여 있다니….
그러나 거기에는 절제된 서정이 조용히 숨쉬고 있다. 때로는 돌 대신 깃털, 녹슨 숟가락, 빛바랜 사진 등이 놓이기도 한다. 오브제로 쓰인 책과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돌·깃털·숟가락·냄비 등이 이루는 이미지의 불균형, 혹은 이미지적 파격이 그의 그림을 못잊게 한다.
극사실적인 열정과 초현실주의적 「낯설게 하기」기법이 거꾸로 그의 그림을 해외시장에서 「낯익게 하기」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단에서 나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전시회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만 공부한 작가가 해외순회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됐으면 합니다. 세계화단의 조류가 확정되지 않고 있는 지금, 본성과 뿌리가 있는 그림으로 국제화에 뛰어들고 있다는 작가적 자부심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가 유럽시장에 첫발을 디딘 것은 86년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후 작품 슬라이드를 싸들고 파리 화랑을 찾아 나섰다가 어렵지 않게 자신과 성격이 맞는 화랑을 만날 수 있었다. 유수한 화랑으로 꼽히는 알랭 블롱델화랑이었다.
『1년에 3점만 팔리면 개인전을 하자』고 그 화랑은 제의했으나 3개월만에 3점이 나갔다. 그 후 전속작가가 되어 그 화랑에서 여는 많은 그룹전에 초대되었고 88, 90년에 개인전이 이루어졌다.
그의 그림이 유럽과 미국에 결정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91년 파리의 FIAC국제미술제였다. 그의 그림은 프랑스 TV에서 두 차례 방영되었으며 렉스프레스지에도 사진이 실리면서 매진되었다.
그는 올 순회전 때 처음에 20점을 출품한 뒤, 팔리는 만큼씩을 보충해 갈 예정이다. 세계미술 경기가 안 좋아서 각 전시회마다 절반 정도만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고리타분한 구상작업이지만, 분명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지닌 그림으로서 「더불어 같이 있다」는 메시지를 현실화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알랭 블롱델화랑 외에 한국의 가나화랑, 뉴욕의 마리사 텔레화랑이 그의 전속화랑이 되어 이 순회전 일정을 짜고 있다.【박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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