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의 생애를 당대에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격과 몸가짐 대인관계, 지식과 판단력등을,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했던 공인으로서는 업적과 공과등을 평가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올바른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겨져야 마땅하다. 어제 하와이에서 별세한 고 정일권 전국회의장에 대한 포폄이나 평가도 그같은 관점에서 내려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전의장은 정부수립이래 이 땅에 부침했던 숱한 각계의 지도급 인사들중에서 매우 독특하고 가장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다. 륙참총장 외교관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 국회의장 집권당의 당의장 국정자문위원등을 두루 역임했다. 이런 고인이라 그의 부음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가 8·15광복후 북한 인민군의 수뇌부를 맡아 달라는 김일성의 권유를 물리치고 월남, 창군에 참여했고 6·25동란 직후에는 33세의 나이로 륙해공군 총사령관이 되어 전군을 지휘하며 국토방위에 진력했다. 정전후에는 군인에서 외교관으로 전신했고 5·16쿠데타후 제3공·유신시절에는 외무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장등 득의속에 국가를 위해 일했다. 정전의장이 력대국무총리중 최장수(6년7개월), 또 국회의장을 6년간 장기재임한 것은 비록 여러가지 엇갈린 평가가 있기는 하나 그의 지도력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공인으로서의 그의 장처는 원만한 성품, 친절과 포용력, 강인한 인내력, 자기성격을 드러내지않고 임명권자를 위한 철저한 충성심, 그리고 그토록 오랜 공직재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차례의 독직이나 불정축재등의 말썽이 없었던 점을 들 수 있을 것같다.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가 않다. 과거 만군 및 일본륙사를 나와 일군에 근무한 것을 비롯, 이승만 박정희대통령 밑에서 철저한 충성과 복종으로 고위직을 역임했고 뚜렷한 소신과 철학이 없는채 밑의 사람들을 키우지 않았으며 정인숙사건에 연루되어 도덕적인 흠을 지닌 점등이 지적되고 있다.
물론 정전의장의 생애에 대해 각인의 판단기준과 관점에 따라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어쩔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처럼 인물을 키우는데 인색하고 깎아내리는데 열을 올리는 풍토도 흔치않다. 여러 공직을 오랫동안 재임했다고 무작정 추켜 올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적 요직을 두루 맡아 평생 공인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한데 대해서는 일단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시대를 마감한 고인의 위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다음 공과를 엄정하게 분석·판단하여 공은 인정하고 널리 알리며 과는 엄격하게 질책해도 늦지않다.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 자세로 지도자들의 공과를 가림으로써 후세의 교훈으로, 인재육성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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