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5일. 남극대륙의 남위 81도 22분 서경 14도 03분 지점에서 노르웨이인 한명이 얼음 크레바스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남극점 탐험대의 대장정이 3분의 2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사고소식도 모른채 전진중이었지만 한국탐험대도 당시 죽음의 크레바스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한국대가 극점을 정복하고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이 시점에 돌이켜봐도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남극은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남극점 도달」의 역사를 이제 처음 기록한 한국인들은 노르웨이인의 사고를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숨진 노르웨이인은 탐험가가 아니라 과학자였다. 그는 노르웨이의 연구기지에서 2백여 떨어진 곳에서 연구활동중이었다. 노르웨이는 1912년 롤드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밟아 남극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나라. 탐험 그 자체에만 의미와 가치를 둔다면 더할 나위없는 영예를 오래전에 차지했다.
하지만 18세기부터 시작한 그들의 남극탐험은 20세기 끝무렵, 과학자가 연구도중 희생될 정도로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정치·경제적인 목적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래를 위한 투자를 위해서다.
남극은 현재의 땅이 아니라 미래의 땅이다. 엄청난 매장량의 지하자원이 있는 곳이다. 노르웨이는 18세기초부터의 선구적 탐험을 배경으로 1939년에 남극의 영유권을 선포했다. 남극개발의 시대가 열리면 노르웨이의 목소리는 당당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한국탐험대원들이 극점으로 가고 있을때 많은 사람들이 『그 고생을 해가며 왜 그곳엘 가느냐』고 물었다.
선진국들은 수백년전부터 미지의 땅에 미래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쳐왔다. 「남극의 골드러시」가 올때 삽을 들고 끼여들기 위해. 노르웨이 과학자의 죽음도 같은 목적에서이다.
94 한국남극점 탐험대는 이제 소중한 초석을 극점에 세웠다. 그 기쁨속에서 정부와 국민은 남극탐험과 연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않는 자세와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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