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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위하여/박찬식(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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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위하여/박찬식(화요칼럼)

입력
1994.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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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도를 하다가 거울 속의 내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십대 모습을 발견하고 인생의 무상함과 생전의 내 불효를 잠시 생각하며 비감에 젖는다…>  (신찬식작「일상의 찬미·7」―부분)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사람이다. 모습과 버릇이 닮았다 하더라도 성격이나 인격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서로 독립된 개체다. 성공한 아버지는 자녀가 자기의 뒤를 이어주기를 바라지만 자녀가 부모의 뜻을 말썽없이 따라주는 일은 흔치 않다. 자녀들은 부모의 인생이 아닌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관의 아들이 화가가 되기를 원하고 의사의 아들이 영화배우를, 사업가의 아들이 가수를, 엔지니어의 아들이 소설가를, 국회의원이나 장관의 아들이 운동선수나 시인을 지망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상관없이, 불효와 가정의 불행은 이처럼 부모는 자녀를 자신들과 동일시하지만 자녀가 이를 따를 수 없는데서 시작되는 수가 많다.

 20세기의 록펠러가나 케네디가처럼 미국인들은 미국 건국후 처음 1백년간을 빛낸 명문으로 대통령을 두 사람이나 배출한 애덤스가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 부자를 차례로 2대와 6대 대통령에 당선시킨 애덤스가는 존 퀸시 애덤스의 세 아들에게도 어릴 적부터 가문의 명예를 지켜나가도록 교육했다. 

 그 짐은 먼저 장남인 조지 워싱턴 애덤스에게 지워졌다. 조지는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하고 25세에 매사추세츠주의회 의원에 선출됨으로써 우선은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으로 성공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했다. 법률보다는 음악이나 시를 좋아했다.

 백악관에 들어간 후 존 퀸시 애덤스는 조지에게 개인비서 일을 시켰지만 그는 사무나 이재능력이 부족해 늘 애를 먹었고, 일에 흥미를 갖지 못해 술을 마시고 대낮까지 늦잠을 자거나 시작에 몰두하는 날이 더 많았다. 낭비와 나태의 일상 속에서 부모를 실망케 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놓고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욕구불만에 시달린 그는 차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27세가 되던 해 프로비던스에서 뉴욕으로 배를 타고 가던 도중 바다로 뛰어들어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지난달 필로폰 상습투약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박지만씨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춘기인 고교생 때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는 그를 박정희대통령은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야 하는 륙사에 입학시켰다. 박대통령은 아들을 강인한 인물로 키워 자기의 뜻을 잇게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육사 재학중 그 아버지마저 빼앗긴 후에도 그는 어디를 가나「박정희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짐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가정을 허물어뜨리고 인간의 운명을 불행으로 이끄는 원인이 이처럼 사회나 가족의 과도한 기대와 그로 인한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을 우리는 박대통령가족의 경우 외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핵가족시대를 지나 이미 가족의 분열과 가정의 해체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가족의 구조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혼모와 이혼이 늘어 어머니 혼자 자녀를 기르거나 아버지와 아들 단 둘이 살고 있는 집이 많아지고 있다. 노인부부만의 가구나 자녀를 생산하지 않고 부부끼리 사는 가구도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 70년 우리나라 가정의 평균가구원수가 5·2명이던 것이 20년이 지난 90년에는 3·7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추세가 이러하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가정들은 아직 무너진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 어린이의 77%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와 있다(93년4월「어린이 걱정상담실」조사). 

 올해는 유엔이 정한「세계 가정의 해」다. 가정이 건강하자면 가족구성원이 각기 민주시민으로 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가족이기주의를 벗어나서 이웃을 배려해 자제할줄 알고, 부모와 자녀간에도 서로 별개의 인격체임을 인정해야한다.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할줄 알고, 위로받기 보다 위로할줄 알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할줄 아는, 관용과 양보와 타협의 민주적 교양을 갖추도록 교육되지 않으면 안된다. 

 신찬식시인의「일상의 찬미」는 이렇게 이어진다. <…먼데서 걸려온 아우의 전화를 받고/형님의 음성과 너무도 흡사함에/작은 놀라움을 느낀다./한때는 우수에 흠뻑 젖어버리고 싶은/젊은 날도 있었지만,/멀리 떨어져 살면서/형제끼리 가끔 안부라도 전하며/서로가 결코 외롭지 않음을/확인하게 되는 것은/얼마나 즐겁고 다행스러운 일인가…>【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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