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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나이(장명수 컬럼: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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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나이(장명수 컬럼:1632)

입력
1994.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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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친구가 어느날 아기들을 무척 좋아하게 된 자기자신을 발견했는데, 왜 갑자기 그런 증세가 생겼을까 생각해 봤더니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할머니의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란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기는 했지만,모든 어린애들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어디서든 아기들을 보면 눈을 떼기 싫을만큼 아기들에게 폭 빠지곤 하는 자기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의 자녀들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손자손녀를 보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이 오십이니 옛날같으면 할머니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다.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손녀들을 끔찍이 사랑하는데, 그 나이가 되면 자기혈육에 대한 특별한 애착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우러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신문사는 해마다 견습기자들을 뽑아 새식구를 맞이하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햇병아리같은 후배들이 무조건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개 견습기자들이 들어오면 일정기간 관찰을 하면서 능력은 어떤  것 같고, 성품은 어떤 것 같다는등 내나름대로 평가를 하게 된다. 아직 그들과 정이 들기전의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이 귀엽기만 하고, 단점과 실수를 보면서도 미소짓게 되는 것은 큰 변화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가 그처럼 너그러운 선배가 된 것은 생물학적으로 그들의 「어머니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임을 깨닫게 됐다. 내 친구의 아이들이 신문사에 시험을 쳤다가 떨어졌다고 울상짓던 무렵, 나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너그러운 선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이런 본능적인 변화는 세상을 유지하는 힘이고, 생명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는 하나의 성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변화가 없다면 어찌 부모나 조부모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처럼 희생적인 사랑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퍼내어 후손에게 줄수 있겠는가. 또 이 세상의 나이든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을 혈육처럼 이끌 수 있겠는가.

 생물학적인 나이에 따라 인간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와 자각을 좀더 적극적으로 넓혀간다면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큰 축복이 될것이다. 자식사랑에 몰입하던 사람들은 그 사랑을 세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부모의 마음, 조부모의 마음으로 이세상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바라볼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랑에서 한걸음 나아가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것인가, 후세들에게 고통이 적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치는 아기들과 마주 웃게 되는 사랑, 그 아기가 예쁘게 생겼든 밉게 생겼든 뺨을 만지고 싶어지는 사랑, 그 생물학적인 나이에 대한 자각을 좀더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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