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칼럼을 그동안 1백21회 쓰면서 자주 쓴 말이 있다. 『수령과 지도자는 역사를 성장시키는데 이골이 났다』는 구절이다. 점잖게 말해 「역사의 성장」이지 직언하면 사실과 사실의 조작·왜곡이라는 뜻이다. 극언하면 수령부자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 유일체제 세습을 위해 「인민」의 알 권리에 테러를 가했고 이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인 저널리스트이며 사진가이고 탐험가인 에야 오사무(혜곡치)는 수령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1·2권이 나오기 전부터 수령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그는 두차례나 북을 찾았다. 만주 북경 시베리아의 하바로프스크· 모스크바· 타슈켄트등 수령과 관련있는 생존자를 찾아 긴 「탐험」을 했다. 그 결론은 93년4월 「김일성의 진실―영웅전설(1912∼1945년)을 답사하다」라는 책으로 나왔다.
3백10쪽인 이 책의 마지막은 1960년 1월15일자 마이니치 신문(매일신문) 평양발 특파원 기사와 32년후 오늘의 북현실을 비교하는것으로 끝난다.
일본기자가 북의 기자에게 묻는다. 『김일성수상에게 자식들이 있습니까』 『알수없소. 어머니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우리는 그런 문제에 흥미가 없습니다』라고 북의 기자는 답했다.
에야씨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30년전의 북조선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그때는 세습제 같은것에 신경쓰지 않는 건전한 사회였다고 할수 있다』
그가 밝힌 「인민의 알권리」에 대한 테러행위를 몇가지만 들어본다. 1949년 9월28일자 일본 공산당기관지 「아카하타(적기)」는 『신아통신에 의하면 조선인민공화국 수상부인 김정숙여사(30세)가 병가료중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지도자가 관심을 끈것은 1974년께부터였다. 그때까지 「조선중앙통신」은 그를 「김정일」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계기로 조직비서, 당서열 4위가 되면서 그의 이름은 「김정일」로 바뀐다. 물론 그의 어머니 「김정숙」의 이름도 「김정숙」으로 바뀌었다. 김정숙은 유언으로 수령에게 『큰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했다는것이다. 어머니에게서는 「바를 정」을 아버지에게서는 「태양인 일」을 받아 그는 「바로 내가 태양」인 지도자가 된것이다. 1980년까지는 북 인민은 어떻든 속아 살아온것이다.
에야씨는 1991년 두번째로 북에 가 백두산을 삼지연에서 등반했다. 최고봉인 「병사봉」은 이름이 「장군봉」으로 바뀌어 있었다. 또한 시베리아 하바로프스크에서 70여 떨어진 88여단 북야영지 왜스코예에서 태어난 지도자는 87년 11월 완성된 「백두산 밀영」의 「고향집」에서 태어난것으로 바뀌었다. 간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옛 장수봉(1천7백97)은 「정일봉」으로 또 성장했다.
에야씨의 탐험에 의하면 수령은 1939년 5월 유격대를 끌고 조국땅에 왔을때 이곳에 하루 캠프를 쳤었다. 에야씨는 91년 김정숙과 함께 유격대 동료였던 이재덕할머니(북경거주)로부터 42년2월께 지도자를 낳았다는 증언을 들었다. 또한 소련극동군 군사고문 조선어 통역이었던 그레고리 쿠지민 예비역대령으로부터 『여단에 있던 군의 리키센코가 지도자를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
왜스코예에서 난 「유라」는 어느새 「정일」 「정일」로 변하고 「고향집」에서 태어난것으로 사실은 성장했다.
사실만이 성장하는게 아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영화제작자, 사진연구가인 알랭 쥐베르는 1986년 「신분의 기록」이란 책을 통해 「폭정의 메카니즘으로서 사진과 그림의 역할」을 날카롭게 찾아내고 깔끔한 문체로 이를 밝혀냈다.
이 책은 지난해 12월 「20세기 그 인물사―정치권력과 정보조작의 역사」로 번역돼 출판사 「눈빛」에 의해 발간됐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 모택동 카스트로 등등의 이름속에 수령도 「사진이 말하는 「인류의 태양」의 교훈적 전기」라는 장으로 4쪽이 나와있다. 수령의 어릴 때 사진부터 70년 공식사진이 나오기까지의 사진 6장과 수령이 용천평야를 웃음을 머금으며 「슬로비디오」에 나오는듯한 걸음걸이로 벼사이를 헤치는 사진, 청산리 농장에서 멍석을 깔고 앉아 농부들과 담소하고 있는 모습도 있다.
쥐베르는 꼬집고 있다. 『위대한 수령동지께서 매년 풍부한 수확을 거두어 들이는 용천평야에서 농민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는 장면의 설명문은 탁월하나 사진을 조작하는 기술면에서 졸렬하다는것이다.
사진의 조작에는 삭제, 덧칠, 트리밍(마름질)이 필요하다. 정면에 웃음을 띤 수령뒤에는 경호원, 수행원, 농민들이 모두 지워져 있으나 기술부족 때문에 수령의 등뒤로 돌린 오른손 바깥으로 사라진 이의 손목이 불쑥 나와있다. 수령은 벼위를 마치 둥둥 떠가는듯 가고있고 지평선쪽 작물은 지평선에 녹아내려 있다는것이다. 설명문이 없었다면 이 사진은 「황야에서 홀로 웃는 수령」이 된다.
조선 혁명박물관에 전시된 세계유수지인 르몽드 뉴욕타임스 아사히 신문 렉스프레스 타임스 오브 실론등의 수령칭송기사는 모두 광고였지만 기사처럼 이 신문들이 다뤘다는 뻔뻔스런 모습도 개탄하고 있다. 수령에 관한 수많은 외국책, 광고를 내기 위해 북의 외교관이 마약 담배 술을 취급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라고 동정도 했다.
수령과 지도자 부자는 사실과 사실의 세계로 빨리 되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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