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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투병기(장명수칼럼: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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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투병기(장명수칼럼:1631)

입력
199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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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박사 김주환 임상투병 수기」란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삼신각에서 출판한 이 책은 임상과 의료행정에서 한평생 일하다가 63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의료인의 투병기이다. 숱한 투병기중에서 그 책이 화제가 되는것은 그가 투병과정을 자세히 적고 있을 뿐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서 경험한 의료의 질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의사로서 「특별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과정에서 일어났던 숱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분노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의료원장으로 재직중이던 89년 봄 우연히 목에 콩알만한 혹을 발견했던 그는 갑상선암이란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며, 성대를 잃고 성대보조기를 착용한채 1년동안 의사로 일했다. 암의 전이로 원장직을 사임한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투병기와 「병의원 원장학」등을 집필했으며, 92년 8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투병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데에는 소박한 이유가 있다. 나의 병과 내가 겪은 의료를 돌이켜 봄으로써 나와 같은 환자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의사들이 암환자 관리에 좀 더 신중을 기하도록 했으면 하는것이 나의 뜻이다….

 나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의사를 바꾸지 않았고, 의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의사로서 나의 병에 대해 공부하고 의견을 말할 수도 있었지만, 주치의의 말을 듣는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경과를 알아본다고 수많은 검사를 했고, 검사가 진찰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쓸모있는 검사뿐 아니라 쓸모없는 검사도 하고 있다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환자가 희망하든 안하든, 그것이 낭비적이든 아니든, 그 선택은 의사의 자유였다. 거기다가 첨단장비를 이용한 그 검사결과들은 100% 믿을것이 못되었다. 의료가 영리와 결부되어 지나친 검사가 강요되고 있다.

 의사들은 검사결과에 대해 저마다 의견이 다르기도 하고, 때로는 상식이하의 판단을 하기도 했으며,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성의가 거의 없었다. 환자는 자기가 무슨 치료를 왜 받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잘 모르는채, 의료에 의지하기보다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의심스러운 민간요법에 솔깃해지는것은 이와 같은 의료불신의 탓이 크다.

 암이란 전이성이 가장 무서운데도 수술결과를 과신하여 동위원소 치료에 반대한 의사, 목에 멍울이 생겼다고 조직검사를 해달라니까 그것은 임파선이라고 우기다가 종양을 키운 의사, 교과서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처방을 한 의사들에게 나는 혼란과 분노를 느꼈다.

 아내는 불친절한 병원 사무원들에게 질려 문의할 사항이 있어도 참곤했다. 성대를 잃은 내가 궁금한일을 물어봐달라고 부탁해도 막무가내였다>

 김주환박사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춘천과 인천도립병원의 외과과장을 지냈고, 보사부 보건과장직에도 있었다. 그의 투병기는 의료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의사들은 암으로 죽어가며 동료의사가 남긴 비판에 귀기울여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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