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버릇없는 아이」 만들어 심각/공공질서 가르치는 학교밖 교사돼야 2년전부터 학교부근 횡단보도 7곳을 순례하며 아침등교길 생활지도를 해온 서울잠원국교 김련수교감(55)은 「부모는 영원한 스승」이라는 교육격언을 강조하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아이들은 대체로 학교에서 가르친대로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편인데 정작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거나 차량통제구역인 교문 앞까지 승용차를 들이대다 김교감에게 야단을 맞기 일쑤이다.
교단경력 30년째인 서울P국교 신모교사(48·여)는 대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속이 상한다고 한다. 냉탕에서 물장구치며 떠드는 아이들을 말리기는 커녕 수영장에 놀러온 듯이 아이들보다 더 소란을 피우는 어머니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야지』하고 주의를 주었다가는 『당신이 뭔데 남의 아이 기죽이느냐』고 대드는 젊은 엄마에게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우리 어린이들의 생활예절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그나마 미미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가정과 사회는 어린이들이 보고 배울게 없는 생활예절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등 전통적인 가정의 덕목과 따끔한 회초리가 사라진 핵가족시대의 가정에서 어린이들은 「상전」 대우를 받으며 자고 난 이불도 갤 줄 모르는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잘 살아보자」는 구호와 황금만능주의가 풍미했던 60∼7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스스로 올바른 생활습관을 익히지 못한 신세대부모들도 「똑똑한 아이」 만들기에만 열심이다.
오스트리아 회사의 한국지사 직원인 김모씨(37)는 최근 오스트리아인 동료를 집으로 초대했다. 김씨는 식사전에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딸(국교 1년)을 나무라다가 울며 떼를 쓰는 바람에 들어준뒤 외국인동료로부터 『가정교육을 잘못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듣고 낯이 뜨거워졌다.
○충효만강조 잘못
어린이들은 백화점, 식당, 커피숍, 예식장등 공공장소에서 거침이 없다. 서울 중구 소공동의 L호텔 뷔페식당에 근무하는 장모씨(26)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여자손님들만 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휘젓고 뛰어다니며 음식을 엎지르거나 그릇을 깨는데도 미리 주의를 주거나 나무라는 부모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김영화교육사회부장(36·여)은 생활예절에 대한 무관심을 『우리사회가 가족윤리(효)와 국가윤리(충)만 강조하고 사회윤리를 소홀히 해온 결과』라고 분석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시민사회의 윤리에 바탕을 둔 기본생활습관을 어린이들이 체득하게 하려면 학교와 가정·지역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서울강남교육청이 관내 국민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기본생활습관지도 프로그램은 학교―가정―지역사회의 3각체계 구축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교육청은 ▲줄 서서 차례 지키기 ▲휴지 안 버리기 ▲교통규칙 지키기 ▲공공장소에서 떠들지 않기 ▲욕하거나 때리지 않기 ▲침 안 뱉기 ▲먼저 바르게 인사하기등 「민주시민으로 지켜야 할 7가지 기본행동」을 적은 담뱃갑 크기의 카드를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문방구, 만화가게주인등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주고 「학교밖의 도덕교사」가 돼줄 것을 부탁했다. 각 가정에도 매달 ▲자기주변은 자기가 정리하도록 합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합시다등 꼭 지켜야 할 구체적 행동 한가지씩과 지도요령을 적은 통신문을 보내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습관화하도록 했다.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를 연결한 이 프로그램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역삼국교 학부모 김원심씨(37·여)는 「고운 말을 쓰자」는 가정통신문을 받고 「자기」 「숙이아빠」등으로 부르던 남편의 호칭을 「여보」 「당신」으로 바꾸고 될수록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등 2, 3학년인 자녀들에게 바른 말 사용의 모범을 보였다. 그 결과 TV에 나오는 거친 말이나 유행어를 예사로 쓰던 아이들의 말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특히 3학년인 딸은 교내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글솝씨도 좋아졌다.
강남교육청의 프로그램이 거둔 가장 큰 효과는 학교주변 주민들의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잠원국교 앞에서 10년째 신반포문방구를 운영하는 이종웅씨(38)는 「생활교사」라는 긍지를 갖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이씨도 한때는 아이들에게 외상을 주었고 아이들의 등·하교길을 심하게 단속해 매상을 떨어뜨리는 교사들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도 했으나 학교의 협조요청을 받은뒤 줄서기와 인사하기등 어린이들에게 생활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외상을 주지 않고 선생님처럼 잔소리하며 줄을 세우자 머리가 커진 5∼6학년 아이들이 외면해 한달 사이에 매상이 30%이상 감소했지만 이씨는 생활교육을 계속해 나갔다.
○바른 윤리관 정립
1년이 지난 지금 이씨의 문방구는 생활습관교육의 실습장이 됐다. 줄서기가 싫어 다른 가게로 가던 고학년 아이들도 질서의 편함을 깨닫고 하나 둘 다시 찾아와 이씨는 『진짜 선생님이 된듯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기성세대 모두가 이씨와 같은 생활교사가 될 때 아이들의 기본생활습관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질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제거돼야 할 그릇된 관습과 인식의 벽은 너무 두껍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김영화부장은 『군사정권의 산물인 경직된 국가윤리와 핵가족시대의 왜곡된 가족윤리, 출세지향주의 풍조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과잉대학진학열기부터 제거해야 한다』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의 시민윤리, 민주적이면서도 부모의 권위가 존중되는 건전한 가족윤리, 이기적인 경쟁보다는 협동의 가치를 일깨우는 교육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월2회 생활덕목 가르친다/서울 본동국교 「예절교육」/몸가짐·옷매무새·인사법등
『바른 예절습관이 생각과 행동이 올바른 민주시민을 길러냅니다』 서울 본동국민학교는 아이들을 창의적인 민주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예절교육에 역점을 두고 전통한옥의 안방형식을 한 예절실을 교내에 마련, 전통예절과 미풍양속을 실습을 통해 익히게 하고 있다.
8폭 병풍과 문갑, 사방탁자, 화문석등이 놓여진 예절실에서 학생들은 월 2회씩 한복매무새와 기본적인 몸가짐으로부터 다도(다도), 관혼상제등 전통예절을 배우고 익힌다. 전통예절은 물론 실생활에 적용되는 기본예절교육도 실시된다.
기본예절교육은 연간·월별 진도표에 따라 개인생활, 학교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국가생활등 5개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학생들은 교장이나 담임교사의 강의보다 실습과 시범을 통해 바른 말씨와 태도, 걸음걸이, 교실출입예절, 식사예절, 전화예절, 문병·방문예절등을 익히고 있다.
본동국교 학생들은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평가하고 점검하는「생활본」도 갖고 있다. 항상 소지하게 돼있는 생활본은 하루 일과를 등교시간, 아침자습시간, 공부시간, 쉬는 시간, 식사시간, 청소시간, 하교시간, 귀가시간등 8개로 나누어 ▲등교시 부모님께 인사합니다 ▲책상속을 정리합니다 ▲놀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갑니다 ▲손을 씻고 식사합니다 ▲일기를 씁니다등 기본적인 생활덕목의 실천여부를 늘 점검토록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예절교육지도자료를 펴내 시내 학교들에 배포하기도 한 김주천교장(60)은 『바른 예절습관은 어려서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며 『체계적 조기예절교육의 정착을 위해 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임철순부장대우 이대현 김현수 하종오 장인철 김병찬 변형섭 김범수기자(사회부) 오대근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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