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이 체면을 불구하고 나상을 드러내보였다. 더 이상 부끄러워 해서 될 일도 아니고 숨겨서도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에서 대학이 스스로 내린 용단이다. 기초과학교육의 메카와도 같은 서울대의 자연과학대학―. 이 나라에서는 누가 뭐래도 최고 수준의 교육과 연구를 해내고 있으려니 여겼던 자연과학대학이 「우리는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가」를 자문하면서 드러내 보인 기초과학의 교육과 연구가 직면한 위기상황들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하지않을 수 없다.
기초과학을 경시하는 풍조, 낙후한 교육환경, 실험실습여건의 후진성, 교수부족, 모자라는 연구기자재와 연구공간, 영세한 연구비등 기초과학 고등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구조와 여건이 한마디로 「수준이하」임을 보고서는 낱낱이 확인해 주고 있다.
선진국의 이름난 대학과는 비교할 것도 못된다. 건학이 일천한 포항공대보다도 교육여건과 연구여건이 뒤져 기초과학분야에서 일류의 자리를 추월당해 대학구성원들의 사기마저 떨어진 상황이다. 자연대학의 교수 1인당 지도학생수는 27명이나 된다. 서울대 평균 22명보다 많고 포항공대의 7명보다는 무려 20명이나 많다.
1백50명을 수용하는 대형강좌가 24개나 되고 교양과목 강좌당 평균 수강학생이 82명이나 된다. 앉을 자리가 없는 대학원생들, 연구할 공간이 없는 대학원생,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대학원생들이 기초과학연구의 역군이래서야 이 나라 기초과학의 미래상은 기대할 게 없다.
선진국 교수들의 2∼3배인 10시간 이상을 강의에 매달리다 보니 자연과학 대학교수들의 연평균 논문발표는 0.9편으로 국제수준 4편에 턱없이 미달한다. 세계 30위란다. 26위인 대만의 교수들만도 못한 실적이라는 것이다.
기초과학교육과 연구의 주체가 되어 선진국진입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야할 국립서울대의 자연과학대학이 왜 이 지경의 위기상황에 빠져야 했는가. 기초과학교육과 연구를 이대로 경시하고, 방치해 두고서도 21세기의 치열한 국제경쟁, 기술국가주의 격전장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해당주체인 대학만의 반성과 각오로 그것이 해결될 문제란 말인가.
세계적 석학인 대니얼 벨박사의 경고를 가볍게 들어서는 결코 안된다. 이론적 기초지식이 발전해야 기술혁명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론적 기초지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초과학연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이론적 지식을 발전시키려면 대학의 기초과학연구와 교육에 투자를 해야한다고 그는 방향제시까지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이 드러내놓고 있는 기초과학교육과 연구의 위기상황을 보면서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위기에서 탈출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을 대학에만 맡겨 놓아서도 안된다.
국가가 기초과학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연구여건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투자를 확대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기초과학육성을 위한 획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없이, 외국기술이나 이전받고 모방해서 기술선진국이 돼보겠다는 허황된 꿈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핵심주체인 대학과 교수들이 새롭게 대응하는 일이야 말로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뼈아픈 자성이 그것으로 끝나면 안된다. 대학원중심 대학으로 과감한 전환을 서둘러야 하고 교수사회에 경쟁원리를 도입해 연구하고 가르치는 역할과 소임에서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러면서 국가와 기업과 사회에 지원을 과감하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기초과학의 연구와 교육의 새로운 진흥은 기술국가주의가 발호할 21세기에 우리의 명운이 달린 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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