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장명수칼럼」을 써왔다는 이유로 지난 11일 관훈언론상을 받으면서 30년전에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입사하던 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무렵에 나는 이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은 칼럼니스트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나도 칼럼니스트가 되리라는 꿈을 꾸었다. 내가 드디어 칼럼니스트가 된것은 입사한지 19년만인 1982년이었다. 그때 나는 문화부차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매일 쓰는 칼럼을 연구해 보라』는 지시를 받게되었다. 한사람이 매일 기명으로 칼럼을 쓴다는것은 그때까지 외국신문에서나 볼수있는 일이었고, 또 매일 무엇을 쓸수있을지 막막했으므로,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신문들도 칼럼니스트를 양성할 때가 왔다는 신문사의 판단으로 결국 82년 7월부터 「여기자 칼럼」이라는 생활칼럼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후 10여년동안 칼럼을 쓰면서 나는 견습기자시절의 엄청난 착각을 떠올리며 때때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한 칼럼니스트란 「멋진 직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칼럼니스트는 매일 마감시간에 목을 졸려야하고, 자신의 책임아래 홀로 판단할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저 혼자 깨끗하고 잘난척하는 위선자처럼 이 세상의 온갖 일들을 비판해야 하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고약한 직업이다. 그는 또 자신의 부족한 식견과 판단을 인쇄된 글로 만천하에 공표하는 참담함도 이겨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 「매일 실패하는 사람」이라는 패배감에 번번히 빠졌다. 마감시간에 목을 졸려 수준미달의 원고를 넘긴 날은 책상밑으로 기어들어 가고 싶었다. 내가 칼럼을 중단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당신이 날마다 칼럼을 잘 쓰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좋은 칼럼을 쓴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라고 신문사에서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일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칼럼을 쓰면서 나는 여러번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고, 그만큼 우리사회가 이런 종류의 생활칼럼을 필요로 한다는것을 깨닫게 됐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온갖 문제들을 시시콜콜 짚어가는 「작은 칼럼」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나처럼 부족한 칼럼니스트들을 탓하지 않고 키우려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거듭 과분한 격려를 받으면서 나는 한 칼럼니스트로서의 책임을 절감하고 있다. 나는 칼럼니스트가 되겠다는 견습기자 시절의 꿈에 이어 『신뢰받는 칼럼니스트가 되고싶다』는 새로운 꿈, 매우 이루어지기 힘든 꿈을 꾸고 있다.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데 왜 언론의 변화는 그렇게 더딘가라는 질문, 언론의 자유를 그처럼 외치더니 왜 언론자신의 고정관념과 구습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지 못하는가라는 질문, 그리고 기자생활 30년에 왜 그정도의 글밖에는 못쓰는가라는 나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응답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관훈언론상 수상인사로 썼던 이 글을 독자 여러분께 「사신」으로 띠우는것을 용서해 주셨으면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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