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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조선건설”개혁내각 야심찬출범/삼일천하:상(개혁풍운아김옥균: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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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조선건설”개혁내각 야심찬출범/삼일천하:상(개혁풍운아김옥균:8)

입력
1994.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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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벌 폐지·대원군 환국등 14정강 확정/“청국간섭 탈피” 내정·주권독립 박차도/거사이틀째 일 돌연 철군통보… 김옥균 “사흘만 참아달라” 눈물호소 정부조직이 모두 끝났을 때는 이미 해가 높히 떠오른 아침이었다. 「자주적인 근대국가의 건설」이라는 야심적이고 역사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첫날이 밝은것이다.

 밤을 새워 눈이 충혈된 개화파 요인들은 그러나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청국대신 이홍장에게 붙들려간 대원군을 환국시키고 청국에 바치는 조공을 폐지해 세계 각국을 향해 조선의 자립을 알리는 일이 신정부가 수행해야 할  최초의 과제입니다』

 김옥균이 단호한 어조로 회의를 끝냈다. 잠시후 대원군의 환국, 문벌폐지, 내시부와 규장각의 혁파등 조선의 자립과 근대화를 겨냥한 개화파의 14개 개혁정강이 발표됐다. 12월5일 상오였다.

 『창덕궁으로 환궁할 준비를 해주시오. 청군이 변란을 일으킨다면 여기서 당하나 대궐에 가 당하나 마찬가지 아니오?』

 고종이 「좁고 누추하여 노구로서 어려움이 많다」는 대왕대비의 간곡한 뜻을 전했다. 수차례에 걸친 민비의 환궁요구로 고민해 온 개화파에는 또다시 감당키 어려운 요구였다.

 『전하! 이곳이 좁기 때문에 비로소 얼마 안되는 군사로 버틸 수 있는것입니다. 좁은것은 일시의 불편이지만 국가독립의 사업은 백년, 아니 만년의 계획아니오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당황한 김옥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간곡한 주청에도 불구하고 고종의 지시는 흔들림이 없었고, 다케조에일본공사도 『우리가 대궐수비를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장담함에 따라 모두 경우궁을 떠나 창덕궁으로 돌아갔다.

 개화파 요인들은 관물헌(창덕궁 성정각 북쪽에 있는 조그만 정자)을 새로운 본부로 정하고 경계를 한층 강화했다. 경우궁에서처럼 사관장 서재필이 사관생도들과 함께 전내를, 일본병사 2백명이 대궐 안을, 4영의 조선군사들이 대궐 밖을 경계했다.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하루가 불안한 모습으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때 전영 병사 한 명이 헐떡이며 뛰어와 뜻밖의 보고를 했다.

 『지금 막 선인문을 잠그려는데 청국병사 40여명이 몰려와 문을 잠그지 못하게 합니다』

 순간 개화파 요인들의 얼굴이 일시에 굳어졌다. 김옥균의 얼굴에 「올것이 왔구나」하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날이 어두워지면 궐문을 잠그는것이 국가의 예법인데, 이를 방해하다니! 당장에 그놈들을 몰아내고 문을 걸라!』

 박영효의 목소리가 불안한 정적을 깼다. 그의 노기 띤 목소리는 계속됐다.

 『언제까지 청국놈들의 간섭을 받고 있겠소! 어차피 청군과의 대결은 불가피한 일이니 지금 쳐버립시다. 청국 병정 모두 합쳐야 1천2백 밖에 더 되오? 청국상인들까지 합해도 2천 명이 안되는데 무엇이 무섭단 말이요!』

 『그러나 우리 군대 8백명은 지금 준비가 안돼 있습니다. 4영의 총기와 탄약도 얼마나 되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 아니오? 일본군 2백명 만으로 싸울 수 없습니다. 진정하시오』

 김옥균이 흥분한 박영효를 말렸다. 그리고 선인문을 청군의 요구대로 잠그지 않는 대신 전후영 병정 4백명에게 길목마다 진을 치고 밤을 새우게 하는 동시에 일본군대의 경계를 강화했다.

 12월6일.

 청국으로부터의 자주를 표명하고 제도를 혁신한 신정부가 탄생한 지 이틀째의 날이 밝았다.

 개혁을 향한 발걸음이 하나 둘 옮겨진 하루였으나 경우궁으로부터 창덕궁으로 환궁해 선인문을 잠그지 못하고 밝힌 긴장되고 불안한 하룻밤이기도 했다.

 신정부는 제일 급한 일이 군사업무라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전후영사 박영효와 좌우영사 서광범은 급히 전후 좌우의 영문으로 달려가 창고의 병기를 파악했다.

 한 번도 닦지 않아 기름맛을 보지 못한 총은 전부 녹이 슬어 탄환을 장전해도 탄환이 들어가지 않는 형편이었다. 급히 사관들에게 군사를 시켜 총을 분해소제케 했다. 총 속에 낀 녹의 두께가 손톱보다 두꺼웠다. 총 한 자루를 한나절씩 닦아야 할 형편이었고, 칼 또한 마찬가지였다.

 관물헌에서 함께 밤을 지낸 김옥균이 영의정 이재원, 좌의정 홍영식과 함께 아침밥상을 물렸을 때 다케조에일본공사가 나타났다. 그는 느닷없이 『일본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김옥균과 두 대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잠시 말도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얼마 후 김옥균이 당황과 절망이 뒤섞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지금와서 손을 떼고 물러서겠다는 말이 될 법이나 합니까?』

 『이제 새로 정부도 수립되어 훌륭히 일을 해나갈 수 있는데 우리가 관계하고 있는것은 모양이 안좋으므로 철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일본으로서는 다른 열국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의사가 없습니다』

 다케조에의 말을 박영효가 받았다.

 『지금 4영에 있는 총기를 검사했는데 모조리 녹이 나서 쓸 수 있는 총은 한 자루도 찾아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때 일본군이 철수하는것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김옥균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다케조에공사! 지금 들으신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때 당신이 군대를 데리고 나가면 우리 일은 실패하고 맙니다. 사흘만 더 기다려 주시오. 꼭 사흘만 더 기다려 주신 후 귀국 군대를 철수하면 사흘 안에 우리의 힘으로 자립할것입니다. 그때는 더 사정하지도 하지 않을것이니 사흘만 참아 주시오』

 김옥균은 간곡했다.

 다케조에가 마침내 그의 열성에 감동한 듯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그리 합시다. 사흘만, 공연히 깊이 관여해 처지가 곤란하게 되었으나 일이 이왕 이같이 된 바에야 하는 수 없지요. 그러면 청하시는 대로 사흘만 약속합니다』

 다케조에가 돌아가자 긴급회의가 소집돼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 때 전령이 달려와 급히 보고했다.

 『지금 청군의 통역이 와서「원세개가 전하를 알현하기 위해 군사 6백명을 거느리고 두 패로 나누어 동서 양쪽 문으로 들어오려 한다」고 전합니다』

 『그 통사를 불러들여라!』

 김옥균이 다급히 외쳤다.

 그때였다.

 『타타탕! 쾅!』

 전령이 뛰어나가기도 전에 요란한 총소리와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글/서사봉기자/사진/최규성기자

◎개화파추진 「14개 혁신정강」 내용:상

 개화파의 사상은 삼일천하 마지막 날이었던 1884년 12월6일 상오에 공표된 14개의 혁신정강에 집약돼 나타난다. 

 각 조항에 담긴 개화파 사상의 대강은 아래과 같다.

 제1조 대원군의 조속한 환국을 추진하고 청국에 대한 조공을 폐지한다 =신정부가 조선의 완전자주독립을 대내외에 공포한것이다. 1882년부터 전개된 청국의 조선 속방화정책을 거부하고 관습화된 조공까지 조선왕조 처음으로 전면 부정한 한국근대사의 획기적인 조치였다.

 제2조 문벌을 폐지해 인민평등권을 제정하고 관리등용에 반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개화파는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폐해가 반상신분제도라고 보았다. 신분제도의 철폐와 인재등용을 가로막던 문벌의 폐지를 추진했다.

 제4조  내시부를 혁파하고 우수한 인물만을 택해 등용한다. 제13조 대신과 참찬들은 매일 합문 안 의정소에서 회의를 해 결정한 다음 정령을 반포·시행한다. 제14조 정부 6조 외의 불필요한 관직과 관청은 모두 철폐한다 =이 조항들은 내각제도의 수립과 정부조직의 개편을 공포한것이다. 특히 전제군주제 하에서 입법·행정기능을 수행하던 어전회의를 철폐하고 6조의 대신(장관)과 참찬(차관)이 참석하는 내각회의에서만 모든 정사를 토의하고 결정해 집행토록 한것은 혁신적 조치이다. 종래의 전제군주권에 근본적인 제한을 가하고 입헌군주제의 초기형태로 입법권과 행정권을 가진 내각제도를 창설한것이다.

 제3조  지조법을 개혁해 관리의 부정을 방지하고 백성들의 부담을 더는 동시에 국가의 재정을 윤택하게 한다. 제6조  각도의 환상제도(백성에게 꿔 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갚게하는 일)는 영구히 폐지한다. 제9조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제12조 국가의 재정은 호조에서 관할하고 일체의 재무관청은 폐지한다 =이 조항들은 ▲재정의 통일▲조세제도의 개혁▲탐관오리의 중간착취 근절▲특권적인 독점상업의 폐지등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단행한것이다. 통일된 국가재정과 예산제도가 없어서 재정의 낭비와 문란이 극도에 달한 당시 경제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였다. 혜상공국의 폐지는 보부상의 특권적인 상업제도를 철폐하고 근대적인 자유산업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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