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계 당장악 위한 조치”인식/계파없애라 엄명에 “더욱궁지” 해가 바뀌었어도 민자당의 상당수 의원들은 답답한 마음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민정계라고 분류되던 사람들의 얘기이다. 오는 5월로 예정됐던 정기전당대회도 당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의「일방적 결정」으로 무산돼버려 정치적 회생의 한가닥 희망마저 사라졌다. 또 당소속의원 1백72명가운데 절대다수인 1백30여명에 달하면서도 이제는 당지도부의 엄명에 의해 「민정계」라는 표현도 마음놓고 사용치 못하게 됐다.
지난 6일 김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전당대회의 연기방침을 밝혔을때 이들은 크게 놀랐다. 드러내놓고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자신의 예상과 기대를 비켜나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3당합당때의 골격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당대회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의원의 60%가량은 민정계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전당대회가 자신들의 정치적 건재함을 과시할수있는 계기가 될수 있었는데 무산돼버린 것이다.
더욱이 민주계 못지 않게 이들도 지금의 김종필대표체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에 전당대회가 연기된 것은 상당히 실망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이들의 눈에는 김대표가 거의 명목만을 유지해온 공화계의 보스로서 자신의 정치적 활로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 왔다. 다수의견을 토대로 당을 이끌어왔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 전당대회에서는 당연히 다수파를 대변할수 있는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는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 더 이상 민자당에는 계파가 없다』는 당지도부의 계파타파명령도 이들을 더욱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까지 「민자당의 3계파」라고 말해 왔지만 공화계는 14대총선을 거치며 10명이내로 크게 축소됐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계와 민정계만이 정치적 의미를 가져왔다. 따라서 당권을 민주계에서 장악하고있는 마당에 『계파를 없애라』는 당지도부의 엄명은 바로 민정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과 같다는게 민정계쪽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는 「민주계의 세확장」과 이와 맞물린 「민정계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전당대회의 연기라는 비상수단을 동원,당지도부의 골격을 현상유지토록 한 것에는 당의 하부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보자는 민주계측의 숨은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표경질여부등 당내갈등을 빚게될 예민한 사안은 피해가면서 사고지구당이나 부실지구당의 정비작업등을 통해 두드러지지 않게 하나씩 민주계의 열세를 만회해나가자는 작전이라는 것이다.『이제 계파는 없고 개혁에 동참하는,능력있는 사람을 쓸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지자제선거나 15대총선에서 어차피 5·6공에 뿌리를 둔 인사들보다는「참신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갑갑함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법도 없다. 국제경쟁력강화라는 국가적 과업을 위해 정치적 소모를 줄여야한다는 김대통령의 「큰 명분」에 절차적 문제를 들어 딴 말을 할수도 없다. 또 계파부재를 강조하는 당지도부에 대해 『민주주의사회에서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외쳐봐야 당내갈등을 조장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것이다.【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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