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7월8일 낮. 평화로운 일본 동경만 우라가(포하) 앞바다에 출현한 검은 이양선이 공포탄을 쏘아대자 일본열도는 큰 지진이라도 일어난것처럼 경악 속에 대혼란에 빠졌다. 미국의 매시 C 페리제독의 흑선이 나타나 개항을 요구한것이다.
혼비백산한 덕천막부는 지리한 찬반 격론끝에 이듬해 3월에 다시온 페리제독에게 항복, 개항과 수교를 약속하는 가나가와(신나천)조약을 체결했다. 흑선출현은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졌던 일본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왔다. 개항 6년만인 1860년 카쓰 카이슈(승해주)함장이 이끄는 칸닌마루(함림환)호로 각계 80여명의 사절이 미국에 처음 파견, 시찰한데 이어 잇따라 구미에 많은 선각자들이 파견됐다. 이들은 단지 「구경」만 한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각종 문물과 제도등을 도입, 결국 명치유신을 일으키는등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일본이 눈에 불을 켜고 서구의 문명과 문물을 도입하고 있던 시기인 1866년과 71년에 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등을 추궁하며 개국을 요구하러온 프랑스와 미국 함대를 잇따라 물리친 뒤 나라의 문을 꼭꼭 닫고 쇄국의 길을 치달았고 나중 김옥균·서광범등 청년지사들은 갑신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뒤 외세에 의해 갑오개혁이 단행됐지만 국정문란과 준비태세의 미비·국민의 무지 외면등으로 실패, 망국의 길로 접어든것은 잘 알려진대로다.
일본에서 국제화란 말이 제기된것은 1960연대초부터였다. 즉 일본의 살길은 수출을 통한 고도성장정책이며, 수출증진은 오직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강화 뿐이라는 관점에서 국제화에 관민이 손을 잡은것이다. 그후 80연대에서는 한 차원높은 세계화를 강조했고 90연대에 들어와서는 경제대국과 초일류국가에 걸맞게 「21세기를 지향하자」는 말을 쓰고 있는것이다.
바로 1백40년전의 흑선소동을 한낱 놀라움과 움츠림으로 끝내지않고 국민을 일깨우고 함께 배우고 따라잡자는 끈질긴 정신과 노력이 오늘날 「세계화」를 꽃피우게 한것이라 할 수 있다.
새해들어 「국제화」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있다. 이 말은 작년 11월 김영삼대통령이 APEC(아태경제협의회)회의후 국회국정연설에서 제기한데 이어 연두회견에서 재차 강조함으로써 문민정부의 국정운영 지표로 떠오른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국제화인가」하는데는 해석이 제 각각이다. 즉 「대외관계를 다양하고 끈끈하게 전개하는것」 「외국어 1∼2개어는 해야한다는것」 「급변하는 외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것」등등 제 각각이지만 김대통령은 『각 분야에 걸쳐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것』으로 풀이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국제화의 참다운 뜻은 한마디로 근대화 과학화 합리화 상식화다. 정치 경제 행정 사회 문화 교육등 모든 분야의 제도와 운영을 합리적이고 과학적 상식적으로 꾸려나가는것을 의미한다. 사실 선진각국에서는 국제화라는 말을 좀처럼 쓰지않는다. 모든 부분이 국제화수준인 근대화 과학화 합리화되어있고 문제가 있을 경우 즉각 개선하기 때문이다.
반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외형상으로는 훌륭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전근대성 불합리성 비상식적인 고질투성이다. 우리의 경우 관료들이 편의와 무책임한 자세로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각종 행정규제만 해도 고친다고 한지가 20∼3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똑 같은 타령이니 합리화·국제화는 까마득하다.
지난주 정부가 확정한 후진국형 인재추방과 민생침해사범등 소위 「10대 생활개혁실천사항」의 경우만 해도 새로운 과제가 아니고 력대정권 때마다 국민에게 실천을 호언했다가 흐지부지하고만 위약사항들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국제화지향과 함께 10대과제실천을 굳게 다짐한데 대해 국민이 선뜻 박수를 보내지 않는 이유도 여기있음을 알아야할것이다.
이제 긴 얘기할것없이 「국제화」는 우리 내부에서 깊숙이 병들고 잘못된 사람개혁 제도개혁 관행개혁 의식개혁등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부개혁에 성공하여 과학화 합리화를 이룩할 때 국제화는 자연히 이뤄지는것이다.
또 이같은 내부개혁은 정부·정치권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제화운동」이 한낱 일시적인 정치성 캠페인이 아니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국가생존의 길임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사시적인 국민들도 흔연히 참여하게될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일본은 흑선소동이후 과감하게 끊임없이 개혁을 거듭해온 반면 한번도 제대로 개혁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1백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적 급류에 허우적거리고 있음은 깊이 반성해야할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