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새해비음(우리말 바로쓰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새해비음(우리말 바로쓰기)

입력
1994.01.08 00:00
0 0

 그리 오래전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설빔」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워낙에 없이 살았던 시절이라 큰 명절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옷 한벌 해 입기 어려웠던 사정에서 생긴 풍속이었으리라. 「빔」이라는 말은 「비음」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명절에 새로 해 입는 옷을 일컫는다. 어린이들의 것은 귀엽게「때때옷」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중요한 명절이나 절기를 맞아 그 동안 못 입어 본 새로운 옷을 장만한다는 의미가 컸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옷이 흔하고 「돈만 있다면」원하는 옷을 무시로 해 입을 수 있는 시절에는 그리 매력있어 보이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잘 돌이켜 보면 특별한 상황이나 시기에 마음먹고 새로 옷을 장만하는 풍속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결혼, 졸업, 입학 등과 같은 특별한 계기가 오면 이런저런 선물보다 새 옷을 맞추는 세시풍속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날 농경사회의 어휘인「비음」을 산업사회의 욕구에 알맞게 사용하지 않을 것 같으면 이 낱말은 금방 퇴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다가올 졸업과 입학 철에는 보나마나 많은 학생들이 새 옷을 맞추게 될 것이다. 그런 옷들은 혹시 「졸업비음」이나 「입학비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 되어 결혼철이 되면 신랑 신부는 서로 새 옷을 맞추고 맞추어 주고 할 것이다. 「결혼비음」이라고 할만 하다. 그 덕분에 가족들이 얻어 입게 되는 새 옷들도 당연히 결혼비음축에 들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인들의 회갑, 진갑, 칠순등을 맞이할 때 자녀들은 으레 새 옷을 장만해 드린다. 「회갑비음」이나 「진갑비음」인 셈이다.

 혹시 휴가철에 새로 그 계기에 알맞은 옷을 장만하게 된다면 「휴가비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현상을 전통적인 표현에 유효 적절히 적응시켜 보면 의외로 풍요한 언어 표현을 가질 수 있다고 하겠다. 요즘 새해를 맞아 새로 사거나 맞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바로 그것이 「새해빔(비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보다 풍요한 사회에서는 더욱 풍요한 어휘가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김하수·연세대 국문과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