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들것에 실려 국회법사위에 증인으로 출두한 안두희씨의 모습은 우리를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한다.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들은 76세인 그가 실어증, 또는 치매증에 걸렸다고 썼다. 그가 국회에 나와서 한 일은 들것에 누운채 뭔가 말하려는듯 입술을 몇번 움직인것 뿐이었다. 49년 6월 21일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했던 안씨는 자신의 배후에 대해 입을 열지않았고, 그 사건은 아직도 미결사건으로 남아있었다. 국회가 44년만에 진상을 밝혀보겠다고 암살범을 불렀을 때, 그는 이미 늙고 병들어 말 한마디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암살범은 증인선서도 못했다. 그의 아내 김명희씨가 대신 증언한것은 『92년 백범시해 진상규명위의 요구로 녹음한 1백21개의 테이프에 수록된 사건전말은 자의에 의한 진술이었다』는 것이었고, 국회가 얻은 수확은 그 한마디였다.
김구선생이 암살된 후 범인은 의혹투성이의 수사와 재판을 거쳐 6·25전쟁의 혼란속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권력의 비호아래 잘살고 있다는 풍문이 간간이 들려오기도 했으나, 4·19로 자유당정권이 몰락하자 그는 더욱 철저하게 숨어 살았다. 그러나 김구라는 이름을 잊을 수 없었던 국민은 안두희라는 이름도 잊을 수 없었다.
4·19직후 민주당 정부의 검찰은 안씨를 불러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쿠데타로 중단됐고, 그후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정부는 없었다. 안씨를 국민앞에 끌어낸 사람은 권중희라는 「열혈국민」이었다. 권씨는 12년동안이나 집요하게 안씨를 추적하며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민족정기구현회 회장인 권중희씨는 지옥까지라도 안씨를 추적할 기세로 그가 어디로 도망치든 반드시 찾아내곤 했다. 『민족지도자를 암살한것도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데, 끝내 진실을 숨긴다면 역사앞에 더 큰 죄를 짓는것』이라고 권씨는 암살범을 설득했다. 때로는 협박하거나 폭행하기도 했고, 그때문에 그자신이 경찰에 구속된적도 있었다.
정부를 대신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협박과 폭행을 서슴지않고 암살범을 추적하는 권씨의 방법에 전적으로 찬동할수 없었던 사람들도 지난 4일 국회에서 소리친 권씨의 한탄에는 동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국회조사가 1시간 15분만에 싱겁게 끝나자 이렇게 외쳤다.
『지금까지 뭘하고 있다가 말도 못하는 사람을 불러 무슨말을 듣겠다는 거냐』
역대정부, 국회, 사법부의 직무유기를 이보다 더 통렬하게 풍자하는 장면은 없을것이다. 그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지만, 안씨의 아내는 『3년전까지만해도 남편은 정신이 좋았고 국회차원의 조사나 청문회등이 있으면 증언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국회의 증언요구는 너무 늦었다. 자유당정권 몰락이후만 따져도 30년이상이 흘렀다. 이제라도 정부, 국회, 사법부는 남아있는 의혹사건을 푸는데 성의를 다해야 한다. 증인이 실어증에 걸릴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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