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서 내의까지 선호/품질은 뒷전… 비쌀수록 불티/“기업도 이젠 값싸고 질좋은 제품 주력해야” 미제 진공청소기 독일제 주방기구 일제 전자오르간 이탈리아제 속내의 영국제 화장비누… .
비싸면 비싸니까 사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산다. 가격에 상관없이 이름있는 외제라면 서슴지 않는다. 이같은 의식에 얄팍한 상혼이 가세, 백화점 수입품전문점·체인점 심지어 남대문시장등 재래시장에서 주택가의 양품점에까지 외제수입품은 범람한다. 『국산품애용』을 귀가 아프도록 들으며 커온 현재의 어른들이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누구의 눈치도 볼 것없이 자랑스럽게 구입한다.
『이거 백만원짜리 양복인데 이탈리아제래』 『선물받은 것인데 프랑스제야』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외제선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병적인 상태다. 그러다 보니 가짜 외제를 비싼 값에 사거나 인체에 해로운 화장품· 주방용품을 샀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시내 모백화점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이탈리아의 의류·잡화매장 「엠포리오 알마니」의 작년 매출액은 무려 17억1천4백만원. 「엠포리오 알마니」남자 정장의 수입가는 21만8천4백25원이지만 판매가는 65만원, 넥타이는 수입가가 2만2천9백55원 판매가가 7만원, 구두는 수입가 12만3천원 판매가 25만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중저가상품이 우리나라에선 평균 2·5∼3배 가격의 고가품으로 둔갑했는데도 소비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장의 한 여직원은 『수입가와 판매가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는 고객은 거의 없다』며 『국내 고가품과 가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산품 품질관리법과 수입품관련 상공부고시에 의해 모든 수입품에 원산지 수입가 판매가등이 적힌 꼬리표가 붙어 있으나 이는 소비자에게 「정부가 공식 인정한 외제수입품이니 속아 사는 것은 아니겠지」식의 확신만을 주는 꼴이 되고 만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나 공업진흥청등에서 국산품이 외제보다 품질이 우수하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실험과정의 신빙성을 의심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자들은 외국업체에 엄청난 로열티를 주고 이름을 빌려 제품을 만들고 상표도용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시장에서 이름난 우리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있을 수 없고 가짜는 외국인에게 우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머랭이 될 수밖에 없다.
외제선호는 백화점만이 아니라 달동네에까지 침투한 수입상품전문점에서도 기승을 부린다. 「유니온 마트」 「토탈방」 「리빙키친」등 체인점형태의 매장은 언제나 호황이다. 숭례문수입상가 남도수입상가 국제수입품상가등 10여개의 수입상가가 몰려 있는 남대문시장도 수입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는 실정이다. 개방의 파고는 감당할 수 없이 밀어닥치는데 모두가 남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의식의 국제화가 「전국토의 수입품매장화」 「전국민의 외제소비자화」 로 오인돼선 안될 일이다. 의식의 세계화는 개방파고를 뛰어넘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이는 분명하고도 의식있는 소비행태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작년 우리나라의 수입액 8백38억달러중 소비재는 10·4%인 79억3천6백만달러(93년 11월말 현재)를 차지했다. 전년도에 비해 2·7% 증가한 것에 불과하지만 불요불급하고 값비싼 수입품의 수입증가율은 60%를 훨씬 넘는다는게 상공자원부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모피의류의 경우 전년에 비해 1백9%의 수입증가율을 기록했고 화장품 50·4%, 가죽신발류가 65·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김인호한국소비자보호원원장(52)은 『비합리적인 가격의 외제수입품을 무조건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의식도 시급히 개선돼야 하지만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 지금 소비자에게 국산품애용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맹목적인 외제선호경향이 해소될 수 있도록 국내기업들이 값싸고 질좋은 상품을 많이 만들어내 떳떳하게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김관명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