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 하루만에 “개혁내각짜기 완료”/고종인질 경우궁 「정국장악 사령부」로/이조연·한규직 등 친청파 대대적 참살/김옥균은 호조참판 서재필은 병조참판 맡아 여기서 금호문을 열지 못하면 만사가 끝이다. 청군의 반격에 대응하기 쉬운 경우궁으로 임금을 모시고 혁신개혁을 단행해야 하는 그들은 단 1초도 지체할 수 없는 처지였다.
김옥균은 12월 5일의 새벽 금호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문 지키는 병사 어디갔나』
김옥균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수문장이 뛰어나와 자물쇠를 땄다. 수문장은 그의 심복이었고 김옥균 일행이 도착하면 문을 열어주기로 미리 약정이 돼 있었다. 수문장이 나타나자 개화파 요인들은 다소 마음이 놓였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세 사람은 행동대원 두명을 거느리고 창덕궁 안에 들어섰다. 궐밖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창덕궁 안은 순라도는 군졸들만 눈에 띌 뿐 정적에 싸여 있었다. 달빛은 대낮처럼 밝았다.
『정확히 폭약을 터뜨려야 한다!』
숙장문 안에 이르자 김옥균은 행동대원 봉균과 석이를 인정전 아래 화약 묻은 데로 보내고 곧장 협양문을 향해 뛰었다. 이 때 파수보던 무감이 이들을 발견하고 급히 막았다. 대궐에 들어갈 때에는 대례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들의 복장은 모두 평복이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이 궐문 밖에 어떤 큰 일이 났는지 몰라서 감히 우리를 막느냐?』
김옥균이 노한 표정으로 크게 꾸짖으며 밀치고 들어가자 무감이 따라가며 민망하고도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무슨 일이 났는가를 물었다.
김옥균은 답하지 않고 급히 합문(편전 앞문)밖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미리 약속이 된 윤경완이 병정 50명을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편전 안으로 들어갔다. 임금은 이미 잠자리에 들고 환관들만 대청 밖으로 나와 평복으로 다급하게 들어오는 그들을 보고 놀라 이유를 물었다.
『궁중에는 아직까지 털 끝 만큼도 의심스런 일이 없습니다』
행동대원 변수가 그를 맞으며 귀엣말로 보고했다.
김옥균이 말을 듣지 않는 환관 유재현을 꾸짖는 사이 고종이 김옥균의 음성을 알아듣고 침실에서 『무슨 사고가 났느냐』고 물었다.
○우정국사건 설명
『황송하옵니다. 전하! 지금 우정국 피로연이 있었는데 난데없는 불이 우정국 뒤 여염집에서 일어나고 무수한 자객이 칼을 들고 우정국에 들어와 소신들을 해치려 하다가 우영사 민영익은 참혹히 그 칼에 죽었습니다. 사방에서 불이 나고 총소리가 일어나는 중이오니 전하께서는 빨리 피하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오』
김옥균은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침실로 들어가 우정국 사건을 간략히 전하고 잠시 정전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건의했다.
이 때 동북쪽에서 하늘을 진동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행동대원이 통명전에서 터뜨린 폭약소리였다.
폭음에 놀라 모두 편전 후문으로 뛰어나가자 김옥균이 급히 윤경완등을 불러 고종을 호위하도록 시켰다.
『지금 일본 군대를 요청해 호위하도록 해야 안전할 것입니다』
김옥균이 건의하자 고종이 『그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일본군대를 청해서 호위하면 청국군대가 장차 어찌 하겠소』 민비가 끼어들며 염려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김옥균은 급히『청국 군대도 함께 청해서 호위케 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고 곧 유재현을 시켜『일본 공사관에 가서 일본군대를 데려 오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또 행동대원 한 사람을 시켜 『청국 진영에 가서 호위를 요청하라』고 시켰으나 이는 거짓이었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그는 이미 행동대원에게 지시를 해둔 상태였다.
이어 변수에게 일본공사관에 가서 이번 대사가 뜻대로 됐다는 것을 통보하게 했다.
『이미 다케조에 일본공사를 불렀습니다만 친필칙서가 없으면 그의 군대가 오지 않을 듯 합니다』
김옥균이 잇달아 고종에게 말했다. 고종이 고민하고 있을 때 김옥균이 연필을, 박영효가 백지를 내놓았다.
그러자 요금문 안 노상에서 고종이 친필로「일본공사래호짐」(일본공사는 와서 짐을 호위하라)이라고 일곱자를 썼다. 김옥균이 급히 박영효를 시켜 다케조에에게 이것을 전달하게 했다.
○곳곳서 폭음소리
임금과 개화파 요인들이 경우궁 후문에 도착했을 때 문이 굳게 잠겨 들어갈 수 없었다. 김옥균이 윤경완에게 담을 넘어가 자물쇠를 부수게 했다.
이 때 후영사 윤태준이 대궐에서 일하다 말고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또 전영사 한규직도 이미 우정국을 빠져나와 병정의 옷으로 변복하고 대궐을 거쳐 도착했다. 이 때 인정전 근처에서 하늘을 뒤흔들듯한 폭음이 두 차례 연이어 들려왔다. 봉균과 석이가 터뜨리는 폭약소리였다.
『네가 군사를 통솔하는 장수의 소임을 띠고서 이런 변란을 당해 군사를 거느리고 호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찌 혼자 이런 불경스런 복장을 하고 와서 주상의 마음을 어지럽히는가』 김옥균이 한규직에게 따졌다.
김옥균이 이어 윤경완등에게 다급히 명령을 내림에 따라 분위기가 점차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규직도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묵묵히 뒤를 따랐다.
경우궁 정전 뜰에 이르자 박영효와 다케조에가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 적수공권의 개화파가 일본의 힘을 빌려 개혁을 위한 무장력을 갖추는 순간이었고 김옥균의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가와 모든 비빈들이 정전에 자리를 잡은 뒤 일본공사와 개화파 요인들은 좌우에 도열해 섰다. 또한 일본군사들은 궐문 안팎을 삼엄히 경호하며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전영소대장 윤경완은 당직 병졸을 거느리고 전정 안팎에 늘어서고 사관장 서재필은 사관생도 13명을 거느리고 정전을 에워쌌다. 이인종은 나머지 행동대원들을 거느리고 전문 밖에 시립하자 경계가 물샐 틈없어 보였다.
이 때 청국군 1개 소대가 경우궁 근처에 이르러 동태를 살펴보고 자기 진영으로 급히 돌아갔다.
○청군 급히 돌아가
우정국에서 도망나왔던 좌영사 이조연도 임금이 경우궁으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 그는 한규직 유재현 두 사람과 자주 밀담을 나눴다. 밀담 내용이 청국 군사를 끌어 들이려는 계략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박영효가 이들에게 『지금 변란을 당해 일본공사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호위하도록 요청했는데 군을 지휘하는 3영의 영사가 이렇게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수군대고만 있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윽박질렀다.
윤태준이 『군을 지휘하기 위해 먼저 나가겠다』고 하자 행동대원들이 곧 데리고 나갔다. 그는 소중문 밖을 나가자마자 행동대원들의 칼을 맞고 죽었다. 이조연과 한규직은 아직 기가 꺾이지 않은 듯 『임금의 알현을 허락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서재필이 칼로 앞을 가로막고 행동대원들이 모두 일어나려 하자 이들은 경우궁 후문으로 떠밀리듯 나갔다. 이들 역시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행동대원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수구파의 거두 민영목은 경우궁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일본 병사의 도열 속에 처치됐고 조영하 민태호가 또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와중에 밝았고 정부요직에 대한 인사가 단행됐다. 이것은 개혁의 첫걸음이었다.
전후영사에 박영효, 좌우영사에 서광범, 병조참판에 서재필이 각각 임명돼 군을 장악했고 김옥균은 내정과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참판을 맡아 개혁의 최선두에 섰다.<글·서사봉기자 사진·최규성기자>글·서사봉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