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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시각미술(21세기의 주역/세계의 젊은이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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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시각미술(21세기의 주역/세계의 젊은이들:1)

입력
199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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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그림시대 연다/“새장르 개척”… 첨단과학과 접목시도/「순수」영역과는 아직 갈등… “우리 미래의 몫” 21세기는 도전이다. 도전은 오늘을 살며 내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21세기를 6년 앞두고 지구촌 젊은이들은 다음세기의 주역이 되기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한국일보는 창간40주년을 맞아 지구촌 젊은이들의 도전의 현장을 집중조명해 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편집자주】

 뉴욕 맨해턴의 남쪽에 자리잡은 그리니치 빌리지는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 나오듯이 화가들이 몰려사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빌리지는 오 헨리의 시대와는 판이하다. 미술가들이 그리는 그림도 달라졌고 그들의 생활양식도 변했다.

 조각을 공부하다 컴퓨터에 탐닉하게된 피에르 데커랑걸(남·28)은 프랑스 출신의 컴퓨터미술가다. 그는 이곳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는 그룹에 속한다. 미술가들의 선망의 대상인 로프트(지붕밑의 넓은 다락으로 넓고 천장이 높음)에 차린 그의 스튜디오는 전통적인 화가들의 화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붓과 물감같은 것은 없고 책상위에 매킨토시 컴퓨터 한대와 캐비닛에 소프트웨어파일이 차곡차곡 세워져 있다. 아직 컴퓨터 미술에 낯선 사람이 그를 미술가로 보기에는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풍경화속에 미국적 전설을 삽입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티브 데프랑크(남·30)는 역시 맨해턴 미술가들의 거리인 소호에서 가난하게 산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데프랑크는 중견화가의 스튜디오 일을 도와준다.

 데커랑걸과 데프랑크는 뉴욕의 전문 미술학교인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에서 작가수업을 받은 후 미래를 향해 정진하는 동시대의 젊은이들이지만 생활이나 예술관은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컴퓨터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미술도시로서 뉴욕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관대함 또는 야만성이 있다. 거리의 낙서에서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인상파 걸작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스펙트럼안에 모든 것이 소화되는 것이 바로 뉴욕이다. 화가인 게리 스테판(50·SVA교수)은 『뉴욕의 다민족문화, 산업활동의 집중력은 작가활동을 지탱하는 힘을 발휘, 세계 어느 도시도 따를 수 없는 창조 에너지를 분출한다』고 말한다. 미술의 순수성과 상업성이 혼재되는 것에도 관대하다. 텔레비전광고를 도안하는 사람도, 순수화가도 다같이 「아티스트」라는 이름아래 받아들여 진다. 그래서 뉴욕에는 21세기를 향해 뛰는 수만명의 작가들이 몰려있다.

 뉴욕미술계는 그 어느 도시보다 컴퓨터기술 도입에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혁명과 컴퓨터기술의 광범위한 도입으로 뉴욕미술계는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를 겪고 있다. 도전과 희망, 그리고 불안과 혼란이 뒤엉켜 있다. 많은 작가들이 컴퓨터로 미술의 장르를 허물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소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피나인 하트(여·32)는 『작가세계는 지금 컴퓨터의 기능을 놓고 보이지 않는 내면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상업미술의 도구로서 컴퓨터사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다. 스웨덴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베스 프리모디그(여·29)는 『그랙픽디자이너 90%가 컴퓨터를 쓴다』면서도 『컴퓨터가 빠르고 깨끗하게 일을 처리하는 장점은 있으나 사람머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경고한다. 인간만이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점을 중시하는 말로 첨단 과학과 예술간의 접목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컴퓨터는 이제 순수미술에까지 영토를 넓히고 있다. 더커랑걸은 『컴퓨터는 붓을 대신할뿐 아니라 3차원을 그릴 수 있는 능력때문에 앞으로 더욱 매력적일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컴퓨터가 몰고올 미술의 변화에 매우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다. 그는 『피카소가 살아 있었더라도 틀림없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렸을것』이라며 『컴퓨터 미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이르지만 21세기에는 컴퓨터의 발달로 미술가는 창조활동에 더욱 몰두할 수 있고, 컴퓨터미술의 발달은 원작개념을 흐려 놓을것』이라고 전망한다.

 컴퓨터에 대한 작가들의 반응은 대립되어 있다. 「로큰롤」 잡지와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일하는 사진작가 봅 버그(남·38)는 『컴퓨터와 사진은 창조라는 측면에서 따로 간다』며 컴퓨터를 무시한다. 그러나 SVA대학원에서 사진작가수업을 받는 김우영씨(34)는 『상업사진이든 예술사진이든 컴퓨터와는 불가분의 관계로 들어가고 있다』며 컴퓨터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가 데프랑크는 『비디오미술에 이어 컴퓨터미술이 등장하는등 미술전체의 영역은 넓어지는 추세지만 순수미술의 영역은 좁아질것 같다』며 『전통적인 화가가 공룡신세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는 전통적인 미술과 컴퓨터미술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며, 컴퓨터는 많은 미술가들에게 당혹과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프랑크는 컴퓨터미술의 개성과 창조성에 회의를 던진다. 그는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3만년의 미술 역사에 나를 연결시켜준다』고 주장한다. 『작품이 하나씩 나오는것은 작가에겐 자기 내부를 향한 여행』이라며 컴퓨터로 그림그리는 행위에 반기를 든다.

 컴퓨터를 놓고 벌어지는 데커랑걸과 데프랑크의 심리적 충돌은 21세기를 준비하는 뉴욕의 젊은 화가들이 맞는 공통의 도전으로 볼 수 있다.【뉴욕=김수종특파원】

◎전문미술학교 「SVA」/7백여교수가 현역작가/철저한 실기위중 교육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는 SVA를 비롯해서 프래트 인스티튜트, FIT, 파슨스쿨, 쿠퍼스유니온등 전문 미술학교들이 즐비하다.

 이중 SVA는 뉴욕의 대표적 미술학교이다. 4년제 학부과정과 석사과정을 합쳐 학생 2천5백명이 8백명의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교수는 95%가 현역작가이다. 한국인 교수 앤드루 장(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은 『작가로부터 작가수업을 받는 철저한 실기교육기관』이라고 이 학교의 특징을 설명한다. 이 학교 회화과를 나온 작가 이윤홍씨는 『맨해턴에서 활동하는 역량있는 작가에게 배우는 것은 SVA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맨해턴에 위치한 6개의 학교건물은 겉보기에는 허름하나 속은 각종 기자재와 최신 소프트웨어가 채워진 컴퓨터로 가득 메워져 있다. 맨해턴 21가에 위치한 사진관만 보더라도 대학원생의 개인 암실은 물론 컬러현상기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모든 기자재가 갖춰져 있다. 사진학과장 앨리스 베크오 데트는 『사진작가인 교수진이 70명』이라며 『뉴욕에서는 최고시설』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에서는 종합대학이 미술작가를 키워내지만 미국에서는 SVA같은 전문 미술학교가 키워낸다. 한국의 작가양성의 후진성은 여기에 있다. 그 이유를 장교수는 두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개성에 맞춘 실기위주의 교육보다 이론위주의 표준교육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고, 둘째 종합대학은 미술학과의 교수진과 기자재에 집중 투자하기 보다 다른 분야에 더 투자하려 들기 때문이다.【뉴욕=김수종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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