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종 퍼지듯 모든문제 사랑으로 감싸고… 한해가 팍 저물었다. 「제야의 종소리」라는 말에 낯익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뒤섞여 있는 것이 우리 시대를 간단치 않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시골의 한숨조차 지쳐버린 마을의 삭막에서야 한해가 가는지 마는지 통 모를 일이거니와, 반면 도시의 거리는 왜 그렇게 흥청대야 하는지 모르게 한해를 보내는 과잉의 실감이 있다.
닭의 해인지라 닭이 홰에 올라가 일찌감치 날개를 접고 두 눈도 실룩실룩 감았건만 사람의 무명에는 도무지 깊은 밤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최선이란 뭔가. 최선을 다했다고 흔히 말할 때, 그것이 혹시 최선의 허구는 아닌가. 한해를 보내면서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은 나 자신의 진정앞에서 아무 가책이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과 함께 계유 1993년을 보낸다.
특히 올해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자못 감회가 없지 않았다. 지난 60년의 세월을 돌아볼만한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일제식민지체제의 강화, 중일전쟁, 세계제2차대전 그리고 해방정국의 내전 및 6·25전쟁에 이어 4월혁명, 5·16쿠데타이후의 오랜 군사주의를 거쳐오는 동안 그 절대빈곤의 산야와 폐허 그리고 무작정 개발과 독재의 과정에서 어찌 붉은 피와 진땀이 없는 태평연월이 끼여들 수 있겠는가.
이런 세월의 간난으로 제대로 꽃피워본 적 없는 청춘을 내동댕이쳐 어느덧 저문 심신이 으슬으슬해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실로 오랜만의 비군사적인 새로운 문민시대가 열렸다. 이 시대의 전격적인 개혁의 시작은 세계 각처의 개혁분위기와 함께 그 명분이 확고하다.
그 뿐 아니라 어떤 잘잘못의 철저한 지적과 함께 새 정부는 우리가 함께 발전시켜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적대와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비판이 필요한 대상이다.
다만 이런 시대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문민 문화의 창의가 세계의 미아가 될 위기 앞에 얼마나 발휘될 수 있는가라는 엄혹한 과제를 우리는 걸머지고 있다.
아직도 80년대 항쟁 이데올로기의 성찰 없이 그것에 짓눌리는가 하면 지극히 반역사적인 도시의 소모주의가 판치고 있는 지적 란조는 이로부터 극복되어 마땅하다.
이런 중에도 어느 해나 한결같이 산 생명체는 그것이 발등위의 벌레이건 공중을 날아가는 새이건 그런 것과 함께 살아가는 이 땅의 남녀노소 각자가 이룬 노작으로서의 삶은 서로 남남이 아니게 감동적이었다.
이제 한해를 보내는 일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굴절된 애착이 아니라 그 과거가 내일의 정신에 어떤 명시의 힘을 낼 수 있는가의 모색이 될 수 있다.
93년을 보내는 자정의 종소리는 그 종소리의 메아리에 새로운 문제에의 사랑이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설령 철딱서니 없는 술꾼도 이런 시간에는 취흥보다는 각성의 상태를 실컷 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올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상상과 설계 때문에 지난 한해의 경험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요컨대 이 땅의 근본주의인 보수와 진보의 분별이 창조적으로 승화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행복은 다시 한번 세계의 새로운 개념인가? 그렇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