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들어 「우려」현실로/최근 개편때도 기대무산 「복지불동, 인지대망」(조용히 엎드리면서 참고 기다린다)
민자당내 민정계인사들은 계유년 한해를 이같은 심정으로 살았다. 당소속의원 가운데 30여명에 불과한 민주계에 비해 1백30여명이 넘는 당내 절대다수의 계파이자 자신들이 밀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민정계는 소외감을 떨구지못한채 새해를 맞고있다.
민정계인사들의 우려는 93년 새해가 밝아오면서부터 현실로 드러났다. 대선과정에서 『안정속의 개혁』을 내걸었던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신년기자회견에서 「안정」보다는 「개혁」쪽에 무게를 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정부를 「6공2기정권」으로 생각했으나 김대통령당선자는 「2공」이라는 표현으로 이전까지의 군사정권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김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출범한 1기내각의 구성도 민정계에 확실한 소외감을 주었다. 정부쪽에 황인성총리 이해구내무 이민섭문체 최창윤총무처장관등이, 당쪽에서는 김종호 김영구의원등이 정책위의장 원내총무로 기용되기는 했지만 누가 보아도 힘의 중심은 민주계로 기울었다. 불만은 있었으나 『처음이니까 그렇겠지』 『1년만 기다려보면 달라질것』이라며 서운함을 달랬다.
그러나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3월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사정정국은 남아있던 민정계의 여유를 완전히 쓸어갔다. 『정당한 방법으로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을수 있었느냐』는 여론의 질시속에 같은 여권에 있으면서도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돼버렸다. 김재순 박준규 유학성 김문기의원등이 정계를 떠나고 남은 민정계인사들도 조여오는 압박감속에 점차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정치권 밖에서는 슬롯머신사건, 동화은행사건에 대한 수사와 포철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박철언 김종인의원이 구속되고 박태준전최고위원이 돌아올수없는 유랑길에 올랐다.
또 감사원에서는 「성역없는 감사」를 내걸고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에 대한 감사로 5, 6공의 핵심부까지 파고들었다.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금융실명제도 「돈과 조직」에 익숙해진 민정계의 정치적 활동반경을 크게 축소시켜 버렸다.
이같은 일련의 개혁조치는 이미 정치권에 널리 퍼져있는 「물갈이논」의 증거로 해석되면서 상당수 민정계인사들은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기도 했다. 『공천을 못받더라도 지역구만 든든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민주계의 실세라고 알려진 인사들과 친해보려는 세칭 「신신민주계」도 생겨났다.
하지만 6월의 명주·양양보선에 이어 8월의 대구보선에서 민자당이 연속 고배를 마신것을 계기로 민정계가 잠시 목소리를 높였던 때도 있었다. 무능력한 내각, 살아나지않는 경제, 연이은 대형사고, 공무원의 기강해이등이 겹치면서 『1년을 채 가지못할것』이라며 국면전환을 기대했다. 『언제까지 적자 서자 양자 그리고 교하득자(다리아래에서 주워온자식)로 차별할것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부지런히 모임을 갖는등 한동안 뜸했던 발걸음도 빠르게 움직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김대통령이 「중단없는 개혁」과 「분파적 행동금지」를 일갈하자 쑥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12·21개각등 여권진용개편에서 민정계의 소외감은 깊어질대로 깊어졌다.민정계인사들은 『지자제선거때까지 기다려보자』며 대기시한을 1년 더 늘려잡고 있지만 소외감을 떨치지는 못하는 모습들이다.【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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