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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암기·반복학습 벗어나게 하자(초등교육을 살리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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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암기·반복학습 벗어나게 하자(초등교육을 살리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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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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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경험통해 판단·창의력 높이게/적성·능력고려 「개별화 과제」 바람직□특별취재반

임철순 부장대우 이대현 김현수 하종오 장인철 김병찬 변형섭 김범수기자(사회부)/이종철 고영권기자(사진부)

 「물고기를 잡아 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 「철학을 가르치지 않고 철학하는것을 가르친다」

 국제화, 정보화가 지배하는 현대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든 단순한 지식주입을 넘어 학생들의 판단력과 창의력 배양에 역점을 두고 있다. 92년에 고시된 우리나라의 제6차 국교 교육과정도 「21세기를 주도할, 건강하고 자주적이며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한국인의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수업시간의 교수―학습활동은 물론 학생들의 독자적 학습영역인 숙제 역시 학교 안팎에서의 실습과 경험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습득, 교과방향을 스스로 파악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학업의 연장이자 사회생활교육의 실천장이라는 성격을 갖게 됐다. 최근에 학교인근 관공서 은행 유적 박물관 공장 탐방, 가문(가문)조사, 토론할 내용 준비, 시사문제정리와 같이 종전의 양채우기식 반복훈련을 지양하는 다양한 형태의 숙제가 늘어나는 추세도 이같은 인식의 변화덕분으로 풀이된다.

○예습에 더 비중을

 지난달 서울인왕국교 6학년7반 여학생 3명이 걸프전에 관한 사회숙제를 하기 위해 한국일보사 국제부를 찾아왔다. 정부종합청사에도 다녀왔다는 이들은 전쟁의 원인 경과, 중동지역의 지리적 위치및 지하자원 매장량등 선생님이 제시한 숙제방향에 따라 산더미같은 신문사자료를 일일이 넘겨보며 복사, 요약했고 국제부기자의 자세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원현진양(12)은 『실과숙제 때는 수협중앙회에 찾아가 하는 일을 조사했다』며 『자료가 있는 곳을 찾는 일과 돌아다니기가 힘들지만 호기심이 끌려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이 학급의 최은임담임교사(43·여)는 『학생들이 스스로 정보를 종합해서 만든 리포트를 토대로 토론과 보충설명이 뒤따른다』며 『시대흐름에 맞춰 숙제도 정보취득과 자율적 사고를 중시하는 예습위주경향이 계속될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경향은 81년 4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 교과서, 특히 사회 자연과목 교과서가 단원별로 「알아보자」나 「조사·연구해보자」는 식으로 해답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강조하면서 두드러졌다. 방학숙제는 양적으로도 많이 줄어들고 질적으로도 교사 학생 학부모들의 호응을 받는 상태다. 방학숙제 교과서인 「탐구생활」에 따라 고구마, 올챙이를 집에다 갖다놓고 잎이 나오고 꼬리가 사라지는 성장과정과 변화양태를 방학기간 내내 집에서 관찰하고 그림보고서로 제출하는 식의 자연숙제는 이미 도시에서도 보편화됐다.

 4학년생 딸의 학부모 전영선씨(36·여·서울용산구이태원2동)는 『탐구생활 말고도 학교에서 독후감 논설문쓰기, 모형제작등 선택해서 할 수 있는 방학숙제를 내준다』며 『지난 여름방학때는 딸이「하루 1백번줄넘기」숙제를 선택해 매일 운동을 했다』고 얘기했다.

○양·시간 줄여야

 이화여대 조연순교수(45·여·초등교육)는 『최근의 과제물은 서양식 교육방법의 도입에 따라 주제학습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한글 자모음 익히기나 99단암송같은 기초사항을 뺀다면 분량만 많은 기계식 반복숙제는 사실상 불필요하다고 단정짓는다. 조교수는 더 나아가 과밀학급문제나 국정교과서 체제의 일률적인 교육여건을 뛰어넘어 능력에 따라 개인별 숙제를 내줄 수 있는 일선 교사들의 성의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묵국교 5학년 김상우담임교사(40)도 이런 점에서 사회 전반적 교육여건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교사가 숙제를 낸 의도와 달리 학생들이 전과나 백과사전을 그대로 베껴오는 경우가 많은데 도서관이나 컴퓨터통신등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턱없이 열악한데다 정보를 갖고 있는 관공서에서도 학생들을 귀찮아 하고 있고 학부모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별 도움을 못 준다는것이다.

 그는 『각 학교가 교과서진도에 따라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관공서에 학생들이 몰린다』며 『경찰서에서 숙제때문에 견학온 학생들을 돌려보내며 미리 준비한 홍보자료만 나눠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의뢰에 따라 교육과정 개정을 연구중인 한국교육개발원 컴퓨터교육연구센터 본부장 곽병선씨(51)는 『기존의 일률적인 숙제는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프로그램화하고 학교밖에서는 자기중심의 개별화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인솔해 관공서나 도서관을 방문하는등 정보취득 과정에서 학생들이 더 정확하고 많은 자료를 얻도록 교사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국교 5학년생 딸을 둔 윤영숙씨(36·여·서울 은평구 녹번동)도 『아무리 숙제내용이 좋더라도 학생들에게 맡겨놓기만 하고 지도가 없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선생님들이 너무 무관심하고 무조건 어디에 갔다와라는 식의 숙제를 덜컥 내줘 학생들이 여유를 갖지 못하고 허겁지겁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곽본부장은 학교밖에서 개별화학습이 이루어져야 할 분야로 「아버지직장 견학」등 집안알기를 보기로 들면서 우리나라 교육전통에서 숙제를 없애는것은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이현숙씨(36·여·서울 강남구 개포동)는 『3학년생 아들이 사회숙제로 족보를 들춰가며 조상중에 위인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살펴보고 미술숙제로 아버지 발바닥을 그리면서 아버지와 더욱 친밀해졌다』며 『학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즐거운 숙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교과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오기」 「문제 답해오기」등의 구태의연한 복습과 암기를 위한 반복훈련이 숙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는 명심보감의 뜻을 가르치며 한자를 익히도록 하는데 학교에서는 지루하게 한 글자를 수십번씩 쓰게 하고 다 아는 단어의 낱말풀이를 시키며 산수문제를 반복해서 풀어오게 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이런 무의미한 숙제는 유치원에까지 퍼져 있어 이재천씨(33·전북 전주시완산구남노송동)는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배기 아들이 똑같은 글자와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담을 4∼5페이지씩 쓰게 하는 숙제에 계속 시달린 적이 있다』고 화를 냈다.

 서울이문국교의 이준기교장(57)은 『학생들에게 숙제를 떠맡기고 편해보자는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의 태도가 먼저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교장은 『개인의 취미와 적성등 조건을 고려해 각자 창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숙제의 개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의 지도·안내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영 국교 숙제 1주일에 세번/내용도 독후감 등 사고력배양 역점

 우리나라 국교생들은 1학년때부터 기계적 반복학습을 요구하는 숙제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용숙연구원(40·여)이 90년에 우리나라의 6개 국교 3학년생들과 서울에 있는 영국학교 3,4학년 통합학급 학생들의 숙제시간과 숙제내용을 분석한 「국민학교 교육현상에 대한 문화기술적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3학년생들은 1주일에 최단 3시간32분, 최장 6시간17분동안 숙제를 하는등 평균 숙제시간이 4시간45분이었다. 이에 비해 영국학교 학생들의 숙제시간은 평균 2시간47분으로 우리 학생들의 숙제시간이 2배가량 길었다.

 한국국교는 1학년때부터 많은 양의 숙제를 내주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1학년생들도 하루 30분이상(많은 경우 1∼2시간) 숙제를 하고 있으며 면담조사에 응한 학부모들도 대부분 1학년교사가 숙제를 너무 조금 내주면 불안해 하거나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영국학교의 1학년은 숙제가 거의 없었다.

 또 한국국교의 교사들은 거의 매일 숙제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비해 영국학교 교사들은 30∼40분정도면 끝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숙제를 1주일에 세번 내준다는 방침에 따라 숙제를 내주고 있다. 특히 수업을 마친뒤 스카우트활동을 하는 수요일과 주말인 금요일에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숙제가 많더라도 내용이 바람직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 국교는 어느 학교든 교과서의 산수익힘문제를 풀거나 문제집의 산수문제를 풀어 오도록 하는 게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국어도 「교과서 미리 읽어오기」 「어려운 낱말 조사해 오기」등 예습위주나 「동시 외우기」 「독후감 써오기」등 단원내용에 따라 부과되는 숙제들이 많았다. 영국학교에서는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산수숙제가 전혀 없는 대신 학교에서 빌려간 책을 읽고 선생님과 문답하기, 학교 크리스마스공연때 판매할 크리스마스카드 디자인해 오기, 색깔에 대한 단어가 들어가는 격언 조사해 써오기등 창의력을 요구하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홍대부국 6학년 남은영양/“「자유연구제」 공부에 큰 도움줘요”/직접조사… 궁금증 해소로 보람도

 홍익대사대부속국교(교장 김용석)는 4∼6학년 학생들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스스로 주제를 정해 2학기 시작할 때 연구결과를 제출하는 자유연구과제제도를 20년째 실시하고 있다. 6학년4반 남은영양(12·강서구 염창동)은 지난 여름방학에 「우리 농산물과 수입농산물의 차이점」을 조사, 공책 9장분량의 연구결과서를 작성해 은상을 받았다.

 농협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를 듣다가 우리 농촌과 농산물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긴 게 연구동기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입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농산물도 그렇게 될까봐 한번 조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학을 보람있게 보낼 수도 있고 잘하면 학교에서 책(작품집「자유연구」)에다 내주고 상도 주니까요』

 4·5학년때도 자유연구과제물을 냈던 남양은 『전과를 베낄 필요가 없구요. 궁금했던 점들을 혼자 힘으로 푸니까 재미있고 연구가 잘 안되면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친구들이 많이 해요』라고 말했다.

 남양은 우선 8월 7∼8일 농협에 전화를 걸어 쌀 땅콩 마늘 영지버섯 곶감 도토리등 9개 비교대상 농산물을 정하고 백과사전이나 팸플릿으로 기초조사를 했다. 

 이어 9∼12일에는 농협전시관에 찾아가 수입농산물을 사서 색 모양 촉감등을 비교해 사진을 찍고 맛과 영양가는 실제로 먹어볼 수 없을 경우에 직원이나 경험자들의 도움말을 참고했다.

 13∼17일 기록과 정리를 마치고 「수입농산물은 우리 농산물보다… 못하다는 걸 알게 됐고 역시 우리농산물이 우리 입맛에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결론으로 11일간의 연구를 완성했다.

 남양은 끝부분의 제언에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비교하는 법을 알아 두었다가 값싸고 품질이 우수하며 우리 몸에도 딱 맞는 (우리)농산물을 골라 먹어 우리 몸도 건강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남양은 이런 자유과제만 내줘도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숙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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