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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없이 「국제화」 없다/정경희(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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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없이 「국제화」 없다/정경희(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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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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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쌀로 지은 밥을 수입 쇠고기국에 말아 먹고, 외제 자동차 타고 외국계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수입 영화를 본 다음 외국계 편의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외국계 병원에 가서 진찰·치료받고…. 「국제화」구호에 귀가 아플 지경이더니 싫어도 이렇게 국제화될 판이 돼가고 있다. 역시 귀에 못이 박힐만큼 떠들썩한 우루과이 라운드덕분에 「외제」라면 오금을 못펴는 사람들 소원을 풀게될 모양이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한 자유무역협상이라지만, 우루과이 라운드는 「부잣집 잔치」로 끝났다. 지난 14일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이 타결되던 날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은 『미국은 바야흐로 역사적 승리를 코앞에 두고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백악관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로라 타이슨여사는 미국이 한해 1천억달러(82조원)에서 2천억달러(1백64조원)의 소득증가를 이룩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유럽공동체(EC)가 미국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부잣집중에서도 미국의 잔치였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세계는 미국제 코카콜라가 싫으면 저마다 호메이니처럼 과격한 반미주의자를 내세우게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정말 지구를 하나의 슈퍼마켓으로 만들어 버릴 것인가? 그래서 거기에서 코카콜라 아니면 호메이니를 선택하게 할것인가?』

 하지만 「부잣집」속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이 들어있다. 「가트(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공식평가에 의하면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예상되는 이득은 이들 선진권이 제3세계의 10배를 챙기게 된다.

 이번 우루과이라운드 최종협약은 제3세계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서는 혜택이 적은 일종의 「불평등협약」이다. 예를 들어 선진권이 서로 사고 파는 무역품은 관세를 절반선으로 내리기로 했지만, 제3세계의 수출품에 대해서는 3분의1정도만 깎아주기로 했다.

 게다가 돈없고 기술없는 후진국이 새로운 산업을 보호·육성할 길이 막막하게 됐다. 보호관세를 낮추게 한데다, 정부보조금을 주지못하게 막아놨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의 울타리가 철거된다면 제3세계는 경제전쟁에서 「무장해제」를 당하는 셈이다.

 결국 기업과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야무지게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는 자기의 산업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국제화」라는 구호가 위기를 알리는 경고라면 몰라도,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허울좋은 낙관론이었다면 살림망치기 십상이다.

 우루과이 라운드란 우리가 택했다기 보다는 동·서의 이데올로기대결이 끝난 뒤에 오는 세계질서의 개편일 뿐이다.

 「냉전」의 시대에는 만사가 단순하고 분명했다. 적이 아니면 우리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새뮤얼 헌팅턴교수(하버드대학교)가 「문명권의 충돌」을 생각하게 된 것도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편 네편을 가를 수 없는 논리적 공백을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새로운 법칙이다.

 그의 문제는 이데올로기대결이 끝난 이제 무엇이 세계를 움직일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의 해답은 『앞으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명」의 갈등이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그의 문명권 인식에는 동의할 수없는 문제가 많고, 억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결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세계는 서방문명과 비서방문명 사이의 대결을 축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이 그것이다.

 헌팅턴과 같은 물음에 대해 역시 미국의 샤피클 이슬람(대외관계평의회 선임연구원)은 또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샤피클은 동서냉전이 끝난 이제 「자본주의 냉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데올로기대결이 아니라, 자본주의국가끼리의 냉전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은 헌팅턴이나 샤피클이 내다본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뜻한다. 적이 없어진 이제 미국을 주로하는 서방권은 과거의 동맹국에 대해서도 「냉전의 떡고물」을 베풀기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전후의 일본처럼 냉전의 떡고물로 경제적 기적을 이루는 일은 이제 지나간 역사가 될것이다.

 지난 11월 APEC 정상회담이 마치 대한민국의 일방적 주도로 진행된것처럼 믿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의 착각일 뿐이다. 미국에서 강의하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미국의 언론이 일본의호소카와(세천)총리, 그리고 중국의 강택민주석에만 관심을 집중하더라고 푸념했다.

 그것이 냉전이후 우리가 처해있는 새로운 입장이다.

 「국제화」란 우리의 후진성을 도려내는 개혁으로써만 이룰 수 있다. 비능률과 사회적 마찰의 마당이 돼버린 대기업이 문제의 핵심이다.

 김영삼정부가 애초에 약속했던 대기업의 구조적개혁없이 경쟁력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대기업이 국민 모두의 공공기업다운 제도적 기반위에 설때 비로소 소모성 노사마찰도 사라질 것이다.

 이 해를 넘기면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될 것은 「개혁」을 포기하고 국제화를 이룩할 수는 없다는 현실이다.

 93년의 그믐을 우리 모두 역사의 한 고비로 받아들이면서 맞기를 바라고 싶다. <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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