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병천은 장인정신에 투철한 소설가이다. 이는 그가 방언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전개할 줄 아는 작가이자 정교하고 시적인 문체를 보여주는 작가라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미덕은 그가 최근에 펴낸 「모래내 모래톱」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래내 모래톱」 「삼가 여국을 아뢰나이다」 「백두산 안갑니다」등 세 편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꿈꾸거나 새로운 현실을 갈구하는 이의 여행기이다.
「삼가…」의 주인공인 중년사내는 어느날 울릉도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그는 여인국에 대한 문서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현길언의 「투명한 어둠」이나 김제철의 「그리운 청산」처럼 고문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인국에 관한 새로운 문건을 통해 여성상위시대를 주장하거나 풍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그 문서를 읽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반성하는가. 그는 입신양명을 위해 아내를 이용하고 처가에 의존해서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자식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생식능력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도 그런 기생적인 삶이 유발한 그의 정신적 불구를 암시한다 하겠다. 바로 이런 정신적 불구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이 절실하다는 깨달음을 그는 울릉도로의 짧은 여행에서 얻는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인생의 참뜻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일상에 매몰된 이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하겠다.
「백두산…」은 북한으로 여행한 이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행기이다. 그러나 「백두산…」은 북한여행기는 북한여행기이되 「김삿갓」식의 북한방랑기나 루이제 린저식의 북한 이야기와 전혀 다르다. 이 작품은 평범한 시민의 북한 방문기로서 맹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나 주체사상에 침윤되지 않고 남북에 대한 균형감각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균형감각은 분단의 극복에 필수적이건만 분단상황 속에서는 그것이 또한 매우 무서운 감각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주인공의 구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런 감각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우리의 분단체제에 강력하게 도전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북한의 풍습과 북한 주민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데 그 적합성 여부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 정성은 매우 놀랍다.
표제작 「모래내…」는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한 것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로의 여행기라 할 만하다. 어린이의 순진한 눈으로 기록한 이 과거로의 여행기에는 어린 시절을 가난한 농촌에서 보낸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일화가 수두룩하다. 그런 점에서 그 일화는 모래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얻은 작가의 개인적인 자산으로 즉 <모래내의 추억이 주는 즐거운 상상> 의 산물로 그치지 않고 지난 시대의 보편적 담화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모래내의 추억이 주는 즐거운 상상>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이 소설을 얻음으로써 빈한한 환경 속에서도 맑은 심성을 끝내 버리지 않은 이들의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풍경화 속에 보다 나은 내일에의 기원이 담겨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다만 이 작품의 끝에 첨부된 후일담이 독자의 무한한 상상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는 어렵다. 이는 독자의 궁금증을 지나치게 의식한 과잉친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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