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의 전쟁 「사정스타」 부상/칼날·소신수사 평가속 “돈키호테” 눈총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사정작업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정과 구조적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쟁은 문민정부의 입지를 다지는 과정이긴 했지만 부정부패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희구해온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지난 5월 3일 술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53) 검거로 시작된 정·관계 배후세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검은 돈을 매개로 한 폭력세계와 권력층의 공생관계를 파헤침으로써 사정수사의 정점을 이룬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30여년동안 부패권력에 힘입어 조직폭력세력의 자금원과 서식처 구실을 해온 슬롯머신업계가 철퇴를 맞았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의원(51), 검찰의 실세 이건개대전고검장(52), 안기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엄삼탁병무청장(53), 천기호치안감(58)등 6공의 실력자들이 속속 이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공직사회의 부패와 타락상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특히 현직고검장이 구속되는 사상최대의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검찰에 이 사건은 사정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내부사정과 자성의 계기가 됐다.
한국판 「부패와의 전쟁」에 앞장을 선 서울지검강력부 홍준표검사(39·사시 24회)는 『비호세력의 척결없이는 조직폭력배를 뿌리뽑을 수 없다는 점을 대원칙으로 삼아 수사를 결행했다』고 말한다.
홍검사는 슬롯머신수사를 벌이면서 예상되는 외부의 수사중단압력을 차단하기 위해 밀행수사 원칙을 깨고 정씨검거계획과 배후세력 수사방침을 공개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독특한 수사방법과 저돌적인 행동방식 때문에 그는 검찰내부에서 선배도 몰라보는 영웅주의자,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쯤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불의와 외압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자세와 소신으로 그동안 어떤 검사도 손대지 못했던 슬롯머신업계를 해부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마피아와 결탁한 부패권력층을 상대로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탈리아사정의 주역 피에트로검사에 비견되기까지 했다.
『한번 뽑은 칼을 외압때문에 거두어 들이는것은 검사의 직무포기』라고 늘 생각해온 홍검사는 이같은 소신으로 검찰선배이기도 한 박의원과 검찰의 실세 이건개고검장의 혐의를 밝혀냈다고 한다.
그러나 구악과 구습의 척결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배후세력 수사가 지나치게 정덕진·동생 덕일씨(44)의 입에 의존, 표적수사·담합수사시비를 자초한 점은 이 수사의 흠으로 남아 있다. 박의원 공판과정에서의 사생활공개를 둘러싼 변호인과의 탄핵증거시비, 표적수사공방도 내내 검찰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슬롯머신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1심공판이 마무리된 지금 홍검사는 5년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고문기술자―전경기도경공안분실장 이근안경감(55)을 찾는데 정력을 쏟고 있다. 『수사를 시작할 때마다 성공해야 한다는 신념을 스스로에게 불어넣는다』는 홍검사는 슬롯머신사건때의 찬사와 비판을 뒤로 한채 6공의 대표적 미제사건인 이근안검거를 위해 집념을 불태우고있다.【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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