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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그날:1(개혁풍운아 김옥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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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그날:1(개혁풍운아 김옥균:6)

입력
1993.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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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불길 안오르자 개혁파 초조/우정국연회 끝날무렵 “불이야” 신호/김옥균·박영효 등 “창덕궁으로 가자”/별궁 방화계획 실패… 순라군 경계속 횃불장소찾기 우왕좌왕 우정국(현재는 우정국이라고 쓰나 당시는 우정국으로 표기했다) 대문 안에는 수레 10여대가 놓여 있고 마당 한켠에선 병정과 하인들이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촛불이 너울대는 불빛이 창문 너머 마당에 희미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낙성식 연회장.

 김옥균은 조용히 좌중을 훑어보았다. 

 건너편 목린덕(묄렌도르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당시 외교를 담당하는 외아문의 협판으로 청국 이홍장의 추천으로 파견돼 내정간섭을 일삼는 자였다. 

 이조연(좌영사) 옆에 앉은 신락균(우정국사사)도 눈에 뛰었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나, 영어에 능통해 홍영식이 초청한 인물이었다.   

 「거사」가 일어난 뒤 적어도 중립을 지킬 인물들이라고 판단한 김홍집(외아문독판) 후트(미공사) 민병석(승지) 아수돈(윌리엄 아스톤)에게 차례로 눈길이 갔다.

○초가라도 태워라

 잠시후 김옥균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음식을 천천히 들게하라』 숙수에게 명하는 그의 낮은 목소리가 이내 어둠 속에 파묻혔다.

 홍영식이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박영효가 뒤를 이어 외국 공사와 영사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술잔을 돌렸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좌석이 한창 어우러지자 여기저기서 취흥 섞인 대화가 오갔다.

 이 때의 별궁(현 풍문여고터).

 별궁 북쪽 담과 붙은 서광범 집에서 대기하던 방화조 6명이 야음을 틈타 별궁 북쪽 담을 넘었다. 

 이들은 미리 포대에 나무조각을 넣어 은밀히 쌓아둔 별궁 정전까지 살금살금 기어갔다.

 불을 붙였다. 

 불이 붙지 않았다. 전날 석유를 30병이나 부은 나무조각에 불이 붙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한 이들은 계속해서 불을 붙였다.

 이 때 한밤중의 고요를 깨는 소란과 함께 멀리서 횃불을 들고 달려오는 포졸들이 보였다.

 『실패다!』

 방화책임자 이인종(묘동판관)은 퇴각을 명령했다. 이들은 북쪽 담을 넘어 간신히 도망쳤으나 별궁 안팎으로는 순라군의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졌다.

 다시 연회장.

 『이런 둔한 자들이 있나!  시간이 이렇게 흐르도록 아직 불을 못 지르다니!에이!』

 김옥균은 입술을 깨물었다. 

 별궁방화에 실패했다는 행동대원 박제경의 다급한 전갈을 받고 임시변통으로 『근처 초가라도 방화하라』는 명령을 내린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김옥균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 밖으로 나갔다. 이 때 어둠 속에서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역시 행동대원 유혁로였다.

 『다른 몇 곳의 방화도 여의치 않습니다. 처음 별궁의 방화가 발각된 뒤로 순라군이 골목골목에 늘어서 경계가 삼엄한데다 두어군데 놓은 불은 포졸들이 달려와 모두 꺼버렸습니다. 모두들 이곳을 직접 습격하자는 의견입니다』

 『안되네, 절대 안되네. 혼란 중에 외국공사를 찌르는 일이 생기면 만사가 끝이네. 순라군이 없는 곳으로 가 불을 놓도록 하게. 아무데나 불이 크게 날 데면 좋네』

 유혁로는 다시 바람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상 위에 질펀했던 음식들은 모두 없어지고 신선로에서 졸아붙는 국물 소리가 연회의 끝을 예고하고 있었다. 얼마후 연회의 마지막 음식인 다과가 들어왔다. 

 김옥균은 왼쪽 끝에 앉은 홍영식(우정국총판)에게 시선을 던졌다. 

○민영익 칼에 찔려

 그의 얼굴에도 초조한 빛이 역력했다. 다시 박영효(금릉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어찌된 셈이요」라고 묻는 듯했다. 맞은편 민영익(우영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민영익은 일찍부터 눈동자를 굴리며 김옥균의 이상한 태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의심 가득찬 시선이 김옥균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때였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세 번 고함치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요란하게 들려왔다.

 젊은 개화파가 일어서는 신호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날로 국운이 쇠락해가는 청국의 속방화 정책과 이들에 빌붙어 조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대친청수구파를 제거하고 자주독립을, 또한 세계의 대세를 따라 잡기위한 근대화를 선언하며 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북창을 등지고 그 바로 앞에 앉았던 홍영식이 잽싸게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벌써 하늘에 닿은 불길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우정국 바로 뒷집을 태우고 근처 초가와 우정국까지 집어삼킬 듯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여러분들, 나는 장수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급히 달려가 불을 끄지 않을 수 없소…』

 불 난 집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소리와 좁은 전동 골목을 갈팡질팡하는 발소리, 당황해 어쩔줄 모르는 좌중의 소란을 뚫고 한규직(전영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한규직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밖에 나갔던 민영익이 칼에 찔려 온 몸에 붉은 피를 뒤집어 쓰고 들어와 쓰러졌다.

 이 때 북쪽 창문을 재빨리 뛰어넘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승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서광범의 돌연한 출현을 이광린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김옥균은「갑신일록」에서 우정국 연회에 자신을 포함해 18명이 참석했다고 적고 있고, 「갑신일록」에 그린 좌석도에도 서광범을 제외한 18명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으나「갑신일록」에 기록된 당시사건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서광범이 연회에 참석한 것이 분명합니다』

 뜰 아래로 뛰어내린 이들은 우정국 대문 밖으로 나오며 각기 암호『천』 『천』을 계속 외쳤다. 

 이들이 외쳐대는 암호 소리는 허둥대는 사람들에게 마치 서둘지 말고「천천이」움직이라는 충고처럼 들렸다. 

 어둠 속에서 동지들이 저지를 지 모를 실수를 막기 위해 외쳐댄 암호는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대문 밖에는 벌써 동지도, 적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난 지 30분 쯤 지난 하오 9시30분께 교동(현 관훈동) 일본공사관.

 공사관 정문에는 무장한 일본군 십여명이 문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총 끝에 꽂힌 칼이 달 빛에 번뜩이며 서릿발 같은 기운을 뿜어냈다.

 『웬일들이시오. 어째서 궐내로 직행하지 아니하고 이리로 오시었소』

○일 지원약속 확인

 벌써 공사관으로 돌아온 시마무라(도촌 구)서기가 다급하게 달려온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에게 꾸짖듯 쏘아붙였다. 그러자 김옥균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을 받았다.

 『당신들의 의사가 변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으니 안심하고 가리다』

 일본공사관에 도착하기 직전, 이들은 궁궐로 가기 위해 전동(견지동) 골목을 빠져나와 사동(인사동)으로 넘어가는 좁은 길목에서 이인종과 서재필(조련국 사관장)을 만났다. 

 김옥균은 이들을 보자마자 민영익을 너무 일찍 손대 일을 그르친 이유를 물으며 크게 꾸짖었다.

 『우정국근처에서 불이 나자 모든 순라군이 달려왔습니다. 우리들은 총 칼로 무장을 하고 있어 들키지 않으려고 우정국 대문 밖 개천에 숨었는데, 민영익이 나오는 것을 본 일본자객 한명이 공을 다투어 먼저 달려가 찌른다는것이 헛찔렀습니다』

 이인종의 설명을 들은 김옥균은 거사계획의 차질로 혹시 일본측의 태도가 돌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발걸음을 돌려 일본공사관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행동조를 이끌고 경우궁(현 현대빌딩 자리) 문 밖에 대기하라』

 급히 명령을 내린 김옥균은 박영효 서광범을 이끌고 창덕궁으로 향했다. 사동 어귀에서 행동대원 김봉균 석이 등이 어둠 속에서 바짝 따라 붙었다.

 『금호문(창덕궁 서문)!, 금호문으로!』<글·서사봉기자 사진·고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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