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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단검론/박찬식(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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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단검론/박찬식(화요칼럼)

입력
1993.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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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년 동구변혁때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을 성공시킨 극작가 바츠라프 하벨은 지난 1월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체코의 대통령으로서 조국의 민주사회 건설에 정열을 쏟고 있다. 그는 68년 프라하의 봄 후 반체제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4년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세계관은 「민족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유럽통합」이다.  거대한 획일적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유럽인들은 그 밑에 억눌려 있던 놀라운 민족적 다양성과 자아확인을 위한 몸부림에 놀라고 있다. 동구의 해체와 수많은 새 민족국가의 탄생은 그 배경에 이같은 치열한 정체성의 모색이 깔려 있다. 

 『유럽통합이념의 위대함은 낡은 국민국가의 개념을 극복하고 모든 나라가 초국가적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민사회의 큰 틀 속에서 각각의 민족적 독자성을 개화시키는데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89년 북한방문후 4년동안 해외를 떠돌다가 지난4월 귀국한 소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은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귀국직전 뉴욕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작가에게는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것이 가장 큰 형벌』이라고 고백했다. 베를린과 뉴욕에서의 오랜 해외체류기간 그는 단 한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못했다. 이 인터뷰기사를 읽으면서 누군가 「문토불이」라고 중얼거리던것이 기억난다. 

 그는 「귀국성명서」에서『저는 방북을 하고나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대변인으로 참여해 온 이날까지 자신이 분단의 장애를 뛰어넘어 앞으로 다가오게 될 통일된 민족국가의 한 성원으로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져왔습니다… 「원칙과 도덕이 굳게 선 신명나는 사회」에서 우리의 민족문학을 풍요하게 하는데 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때까지 저는 글을 쓰고 행동할것이며 이는 한국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북에도 생겨난 내 독자들에 대한 책임이기도 할것입니다』라고 그의 민족문학관을 밝혔다. 그가 다시 세상에 나와, 북에 가보고 느꼈을 갈등과 오랜 유랑의 세월동안 견디기 힘들었을 외로움같은, 작가로서 흔치않은 체험들을 가지고 글을 쓰는 날, 우리는 전에 대할수 없던 큰 작품을 보게 될지 모른다. 

 남북통일의 기운은 이처럼 민족적 정체성 모색의 세계적 흐름에 따라 성숙돼 가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아직 까마득하다. 한반도 주변의 강국들이나 남북한 당사자 스스로가 현상의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반도 단검론」이다. 1백50만의 지상군과 핵무기를 갖춘 강력한 통일국가가 한반도에 출현한다는것은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모두의 심장을 동시에 겨누는 위협적인 단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는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현재 동북아 안보관계에 근본적인 재편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는것이다.

 주목할 만한것은 이 글이 주한미국공보원에서 발행하는 홍보지 「시평(CURRENT VIEWS)」에 실렸다는 점이다. 이 잡지는 93년 제5호에 미브루킹스 외교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토머스 맥노허라는 사람이 쓴 「미국의 전략과 한반도 통일―동북아의 단검을 다시 벼리고 있는가(REFORGING NORTHEAST ASIA`S DAGGER?)」라는 제목의 논문을 번역해서 게재했는데, 그는 이 글에서 「통일이 신속히 이루어지든, 또는 서서히 이루어지든 간에, 한반도의 통일은 매우 불화조성적 성격을 지닌 지역적 안보문제임이 명백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지역의 현상변화로 발생하는 긴장요인을 중화하는 균형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증대돼야 한다는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반도에 대한 시각은 일본 중국 러시아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여름 북경에서 외교부의 한 고위관리를 만났을 때 그가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중국의 주변은 지금 역사상 과거 어느때보다 안정돼 있다. 중국은 평화적 남북통일을 원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남북한과 각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라고 그는 아주 명쾌한 어조로 단언했다. 경제발전이 궤도에 오를때까지 중국은 동북아세력균형의 변화를 어떻게든 저지하려 할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경주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는 일본의 속셈도 한반도의 통일과정에 대한 영향력 증대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주변의 이런 논리적 상황전개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중국과 북한의 개방속도에 의해, 등소평과 김일성의 사망에 의해, 자유를 갈구하는 중국과 북한민중에 의해 갑자기 닥쳐올 수도 있다. 

 통일원과 국방장관이 바뀌었다. 한반도에 급격한 현상변화가 전개될때 정치인들이 친미파 친일파 친중파 친러파로 갈라져 멱살잡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 국민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단단한 안보팀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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