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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과 김영주/박용배 본사통일문제 연구소장(남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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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과 김영주/박용배 본사통일문제 연구소장(남과북)

입력
199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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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북한관찰자, 평양학도들은 수령의 막내동생 김영주가 북 정계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그와 해방전후 한때를 같이지낸 이용상 노시인(69세·전문공부 공보국장)은 지난 11일의 그의 국가부주석, 정치국원 등장을 반겼을 것이다. 지난 7월27일 휴전기념일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 그는 75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후 오리무중 상태였다. 그러나 수령을 관찰하는 몇몇 이들에게는 지도자라는 새술부대에 전임 정치국위원이며 조직선동부장이던 묽은 포도주가 담겨질것이라고 내다 보고 있었다.

 그 첫번째 징후는 수령이 80세 생일을 맞아 펴낸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그가 등장한데 있다. 회고록 2권 사진에는 어머니 강반석이 살던 안도현 소사하집의 사진몇장이 나왔다. 그 옆에 학생모를 쓴 「영주동생에 대한 수배자료」라는 수배장이 나와 있다.

 수령이 1932년 가을 소사하집에 첩약을 싸들고 다시 갔을때 둘째동생 철주(1935년6월전사)가 『소리없이 다가와 내 어깨에 왈칵 매여 달리었다. 「형, 왜 이제야 오우….」 이번에는 영주동생이 돌덩이처럼 난데없이 날아들어 나의 왼쪽 옆구리에 매여 달리었다』 철주가 8살때, 영주가 4살때 아버지 김형직은 죽었다. 어머니 강반석이 40살에 병사했을때 수령은 20살, 철주 16살, 영주는 10살이었다.

 수령의 회고록 4권(93년5월발간)에는 36년 봄 무송현 마안산에 밀영을 꾸렸을때 아동단원들의 비참한 옷차림을 보면서 동생 영주를 회상하고 있다. 『허리를 치는 갈대밭속에서 철주와 함께 눈물을 삼키며 나를 바래주던 막내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삼삼하였다』수령은 이웃에 막내동생을 맡기고 안부를 전하지 못한채 4년여를 보냈다. 인편으로 동생이 처장즈에서 아동단원으로 연예공연을 했다는 단편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후 영주는 관동군의 수령수배를 피해 아이보기, 심부름꾼으로 밥을 얻어 먹으며 동북삼성을 헤맸다. 북경에도 있었고 신경맥주공장에서도 일했다. 한때 평양에도 들렀다고 회고록은 적고있다.

 그후의 수령동생의 행적은 회고록이 36년5월에 끝나 잘 알 수 없다. 다만 「중앙일보」에 91년3월9일∼6월31일 까지 연재된 이용상의 「나의 친구 김영주」에서 45년8월∼46년5월까지의 그의 행적이 드러난다.

 이용상은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45년1월 중국군으로 탈출한다. 45년 9월9일 중국군 73군 193사단이 일본군 혼성 82여단을 무장해제 시킬때 그는 중국군 대표였다. 이때 일본군 중국어 통역관이 김일선이라는 비슷한 나이의 사내였다. 그가 바로 김영주였다. 그후 10월14일 평양에 수령이 나타나 김일성장군으로 등장했다. 이때 그는 그의 형에 관한 모든것을 이야기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형인 수령을 만난것은 40년 말 하얼빈에서 시베리아로 가기직전 형을 만났다는 것이다. 형은 그의 얼굴만 보고 유격대 동참을 허가하지 않았다. 혈육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용상과 김영주는 46년 5월3일께 서울로 귀국했다. 김영주는 1주일을 그의 집에서 묵다가 평양으로 갔다.

 72년 남북회담이 한창일때 이용상은 군에서 안면이 깊은 박정희전 대통령을 만나 그와 김영주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때 박대통령은 『이동지는 공산당에 너무 아마이(달콤해)야』라고 했다. 

 그후 김영주는 새 술부대인 지도자 체제가 시작되면서 북의 정치핵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소설 김일성」을 쓴 이항구는 이 소설 3권에서 수령과 지도자가 얼마나 그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상상해 내고있다.

 93년1월12일은 수령의 삼촌 김형권이 1936년 이날 옥중에서 사망한 날이다. 수령은 찾아온 아들에게 물어본다. 『영주는 요즈음 어드렇게 지내고 있나?』『자강도 강계 료양소서 치료를 잘 받구 있습니다. 많이 좋아지셨다는 소식입니다』

 오진우가 거든다. 『지난해 지도자동지께서 김영주 동지 월동준비 상태를 알아보시구 누비 솝옷하구 이불을 새로지어 보냈습니다』 수령은 말했다. 『음 잘 했구만』

 71세의 김영주를 51세의 지도자의 새술부대에 담는것은 어딘지 북의 체제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 정치판이 벌어져도 옛인물이 등장하는것을 『묽은 술을 새 부대』라고 표현한다. 예수는 말했다고 한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그때 부대는 가죽이었기에 새술을 헌부대에 담으면 부대가 터졌기 때문이다.

 75년이후 사라진 김영주라는 묽은술이 새부대에서 제맛을 낼까. 수령은 확실히 나이가 들어 회고적이다. 지도자의 새부대는 벌써 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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